이주열 총재 창립66주년 기념식서 "사고·행동 과감히 바꿔라" 강조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더 이상 '남산골 샌님'이 아니다. 전방위 압박에 코너로 밀려도 당황하지 않는다. 협상장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며 밀린 듯 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다. 움직임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때론 거침없이 선제공격도 한다. 이쯤되면 밀당의 '고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하다. 바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얘기다.
이 총재는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창립 66주년 기념식'에서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 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며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조직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중앙은행의 기본원칙을 소홀히 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며 깊은 성찰 없이 외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도 분명히 전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관행의 틀을 깰 것을 주문한 것이다.
전날(9일) 단행한 깜짝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그랬다. 그동안 한은 내에선 미국 금리인상,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탈퇴) 등의 대외변수가 많은 6월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7월에 내리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봤다. 기축통화국의 통화정책을 먼저 분석한 후 우리의 길을 정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자 모범 답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생각은 달랐다. 예산 조기 집행, 개별소비세(개소세) 연장, 임시공휴일 등의 정책카드로 근근이 버틴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지금 금리인하 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곤 주저 없이 '통 큰 한방'을 터트렸다. 한은맨들 조차 예상 못했던 카드였다. 이 총재는 "정책 환경이 불확실한 지금 현실적합성이 높은 정책대안을 제시하려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견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초청해 간부 대상 조찬 강연을 연 것도 관행의 틀을 벗어난 행동이다. 66년 한은 역사상 재무장관 출신이 강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 전 장관이 "역사적인 이벤트"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그래서다.
이 총재의 발언도 확 바뀌었다. 그는 이날 창립 기념사에서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통화ㆍ재정정책의 완화적 운용과 일관성 있는 구조개혁의 추진이 필요하다"며 "올해 하반기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경기 회복을 지원하려면 재정정책과 구조조정도 같이 가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한 바 있다. 사상 최저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의 밑바탕을 깔았으니 이제는 정부가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고 선수를 친 셈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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