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정문에 '일베' 조각상 논란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표현의 자유인가, 공공에 대한 모독인가?

서울 상수동 홍익대학교 정문에 세워진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를 상징하는 조각물이 논란 이틀만에 부서졌다. 1일 새벽 20대 남성 3명이 조각상을 훼손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현장에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홍익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설치된 손가락 모양의 조각상은 이 학교 조소과 홍기하(22)씨가 연례 전시 일환으로 제작한 것이다. 작품명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 홍씨는 작품의 창작 의도에 대해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라는 것을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이것에 대한 논란과 논쟁을 벌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베를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 같은 이분법적 의도가 아니다. 이 작품은 공공성이 생명이다. 외부인들도 많이 볼 수 있게 설치한 건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와 내 작품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 작품 훼손을 한다면 이것이 일베의 온라인 폭력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일베가 그동안 여성혐오, 지역비하, 고인모독 등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들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왔던 집단인 만큼 사회의 부정적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를 작품화한 의도 또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익대 학생회 측은 "조각물이 놓인 장소가 홍익대학교 학생들이라는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공간인 만큼 전시장소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했고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작가와 담당교수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학생과 시민들은 조각물에 계란과 음료수 등을 투척했고, 욕설과 비난이 담긴 쪽지가 나붙은데 이어 밤사이 조각물이 파손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에서는 "조각물을 파괴한 것 또한 용기 있는 행동이다"라는 의견과 "만든 사람의 입장도 듣지 않고 강제로 파괴하다니 폭력적이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