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건설, 자동차, 조선, 철강, 섬유 등 업종별 단체 3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다수인 27곳(90%)이 '주력 생산품이 공급 과잉 상태'라고 답했다. 현재 업종이 성장 정체기 및 사양화 단계라고 답한 단체도 26곳에 달했다. 조선ㆍ해운업에 이어 공급 과잉 상태인 철강 업계는 만성적인 공급 과잉 해소 방안을 비롯해 업계의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향을 진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은 최근 울산 석유화학 산업단지 내 염소ㆍ가성소다(CA) 공장을 화학 업체 유니드에 매각했다. 한화케미칼의 이번 공장 매각은 오는 8월13일 시행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법안 통과 이후 민간 업체 간에 이뤄진 첫 번째 자발적 사업재편으로 꼽힌다.
-구조조정·사업재편 속도전에 법 제도는 미비
원샷법은 기업이 합병이나 분할, 자산매각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할 때 이를 원활히 진행하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다. 이런 절차를 밟을 때 필요한 정부의 지원을 일괄적으로 받을 수 있어 원샷법으로 불린다. 대다수 업종이 자신들이 속한 업종을 공급 과잉 상태로 보고 있고 기업들은 자발적 사업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원샷법은 대기업 특혜라는 이유로 적용 대상을 공급 과잉 업종에 국한시켰고 정부는 아직도 공급 과잉 업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지원한다는 법의 본래 취지조차 살리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 경제성장 공식 전환기…19대 답습 안 돼
경제계는 20대 국회(2016~2020년)는 경제성장의 공식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미래 50년, 100년을 위한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1일 국회에 제출한 '제20대 국회에 바란다' 건의문에서 경제성장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을 주문했다.
노동ㆍ자본 투입에 의존한 과거 패러다임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무형자본에 의한 성장방식에 맞춘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한상의는 구체적으로 5대 부문, 11개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규제프리존특별법, 기업제안방식 규제특례, 사후규제ㆍ네거티브시스템 도입,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막기 위한 '페이-고(Pay-Go) 준칙(재원조달방안 제출 의무화)' 법제화 등이 대표적이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경제계는 "새롭게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다. 제발 밀린 숙제라도 해달라는 호소"라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특히 제조업-서비스업 듀얼엔진, 수출-내수 균형성장 전환이 급하다고 보고 산업성장 방식의 제로 베이스 검토와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조속 입법, 사업재편지원제 강화를 촉구했다. 이는 주력사업 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제조업ㆍ수출 위주의 싱글엔진으로는 경제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배구조·특수관계인 규제 등도 개선해야
기업 지배구조와 이사회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안의 경우 현행 상법에 근거하지 않거나 현행 상법과 충돌되는 내용이 27건 이상 포함돼 있어 상장회사에 혼란을 주고 있다.
경제계는 ▲다양한 인종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임된 이사의 임기는 존중돼야 한다 ▲이사회는 경영승계에 관한 정책을 공시해야 한다 등은 법을 잘 지키는 상장회사도 지배구조가 바람직하지 않은 기업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철행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모든 기업에 적합한 단일 지배구조는 없다는 전제하에 기업이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의 '지배구조코드'와 같이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특수관계인 규정은 기업의 영업활동을 위축시킨다. 특수관계인이란 회사의 대주주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특수관계인과의 기업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관계인이라는 용어가 직접적인 규정과 준용하는 법까지 포함하면 50여개의 법률에서 사용되고 있어 용어 자체로도 수많은 변종이 생겨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기업으로서는 모든 특수관계인의 재산 현황을 파악하고 모든 특수관계인을 관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기업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제한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우려는 포퓰리즘
경제계는 19대 국회를 반면교사 삼아 20대 국회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휘말리거나 선명성 경쟁에 빠지지 말아 달라고 주문한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 부작용으로 기업의 국내 투자가 급격히 줄고, 거래도 위축돼 결과적으로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20대 국회는 경제민주화 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국회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20대 국회가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 등 민생현안 해결에 초당적인 협력을 다하고 기업이 자유롭게 경영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시스템의 선진화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