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놓고 한국은행의 직접 출자에 대한 정부 요구가 지속되면서 한은맨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필요성엔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소위 '돈을 직접 찍어 지원하라'는 발권력 동원에 대한 시각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회의가 끝난 이후 한은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회의 후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보도참고자료에 포함된 '직접출자와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간접출자 방식을 병행하는 안을 폭넓게 검토하였음'이란 문구가 바로 진원지였다. 구체적으로 '누가' 지원하는지에 대한 주체가 빠져 있는 이 문구를 놓고 일각에서 한은이 기존 대출방식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직접출자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은은 즉각 반발했다. 한은 관계자는 “보도자료에 언급된 병행안은 주체가 없는 것”이라며 "'직접 출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게 공식입장"이라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은으로서는 이례적인 대응이었다.
그렇다고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권력 불가 입장 발표가 중앙은행인 한은이 구조조정 이슈에 대해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0일 고려대 초청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두고 한은과 정부가 대립하는 모양새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도 그래서다. 이 총재는 "(정부와 한은 간) 대립이나 신경전으로 볼 것은 아닌 것 같다"며 "협의체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원만한 방안이 도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에 대한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한은의 고민거리다. 이미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 요구는 세계적인 추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는 주체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형 양적완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며 "중앙은행 기능의 범위 내에서 우리 경제상황에 적합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칙과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는 불가하다는 게 한은의 시각이다. 발권력 동원에 한은이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 이슈와 함께 한은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기본'은 최소한 꼭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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