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18일 별다른 성과없이 끝난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은 채권단-해외선주 사이의 '게임의 법칙'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합의 결과에 따라 현대상선을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이 윈윈하거나 모두 패자가 되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로 가면 선주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테지만, 용선료 인하를 결정하더라도 그에 따른 현실적인 장애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같은 복잡한 양상은 협상의 무거운 분위기로 이어졌고,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이날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은 '먼저 양보하겠다'고 나서는 선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주들로서는 다른 협상 결과를 보고 인하 여부를 결정하는 게 실익이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런 소모전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대상선과 채권단은 개별 면담이 아닌 전체 면담을 택했지만 계획이 틀어졌다.
당초 컨테이너 선사 5곳이 협상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용선료 인하에 부정적인 영국 조디악은 아예 불참했고 싱가포르 이스턴퍼시픽은 화상회의에만 참여했다. 협상장에는 3명의 선사만 앉았고, 이들 중 누구도 먼저 용선료를 인하하겠다는 의사를 비치지 않았다.
업계는 조디악이 이번 협상의 막판 변수인 것은 맞지만 나머지 선주들이 '인하'쪽으로 기운다면 결국 조디악도 합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해운업의 특성상 조디악이 끝까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벼랑끝 버티기'= 협상의 키는 선주들이 쥐고 있다. 시간도 그들 편이다. 이번 방문에서 선주들은 채권단의 회생 의지를 확인했겠지만, 이것이 오히려 '현대상선의 회생을 확인했으니 먼저 양보할 필요가 없겠다'는 확신을 심어줬을 수도 있다.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앞서 17일 채권단협의회 안건으로 현대상선의 협약채권 중 7000억원 어치를 출자전환하는 방안을 올렸다.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산업은행이 40%대 지분율을 보유하게 돼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갖게 된다. 산업은행은 협상 테이블에서 용선료 인하에 동의할 경우 인하분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를 분할상환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다급한 쪽은 현대상선과 채권단이다.
현대상선은 금융당국이 정한 마감시한 20일 안에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 협상이 우호적으로 진행된다는 전제로 마감 시한이 연장된다고 해도 31일 사채권자 집회 이전까지는 최종 타결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집회 이전까지 용선료 인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사채권자들에게 채무 재조정을 요청할 최소한의 명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주들은 이 시간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포커페이스'= 시작부터 한계가 있었던 협상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선주 관계자들은 의사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선박 대여 업무를 관장하는 임원들이다.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 협상 내용을 경영진에게 보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저들이 메신저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변수가 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최고의사결정자의 몫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를 인하할 것인지, 하게 되면 얼마나 할 것인지 등은 경영진이 내리게 될 것"이라며 "다만 이번 협상 당사자들이 어떤 식으로 보고하느냐가 최종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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