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어둠 속 10년, 못에 박힌 그 녀석에겐 무슨 일 일어났나
소설가 이범선씨의 도마뱀 이야기는
마음을 곱게 붙든다.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집의 벽을 수리하기 위해
뜯었는데 벽과 벽 사이의 공간에 도마뱀 한 마리가
갇혀있더란다. 죽은 놈이 아니고 살아서 발을 꿈틀거리는
통통한 놈이었단다. 유심히 보니 그놈의 꼬리 부근에
못이 박혀있었다. 도마뱀이라면 이럴 경우 꼬리를 자르고
갈 수가 있을텐데, 못이 박힌 부분이
그렇게 자르고 도망갈 위치가 아니었나 보다.
가엾게도 녀석은 그 벽틈의 공간 속에 갇혀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마뱀의 몸에 박힌
못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10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박았던 못이었다. 집의 기둥에 못을 박을 때
재수없게도 녀석이 그 안에 있다가 꼬리까지
못에 박힌 것이다. 그렇다면?
놈은 10년 동안 캄캄한 벽 속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얘기가 된다.
어떻게 살았을까? 지난 10년간 한 목숨에게
닥쳤을 절망과 시련의 크기를 짐작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자기의 처지를 달래며 참아왔을 인내 또한
훤히 짚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 살 수 있을 리는 없다. 그것도 10년간!
벽을 손질하던 주인이 그런 의아심으로
잠깐 동안 이 작은 동물을 살피고 있었을 때
저쪽에서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살금살금 이쪽으로 기어오다가
인기척에 놀란 듯 두리번거린다.
아!
저놈이었구나. 옴짝달싹 못하는 십년 세월을
견디게 해준 사랑.
애인일까. 어버이일까. 자식일까.
혹은 친구일까.
캄캄한 폐소 속에 갇힌 그를 위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저놈은 먹이를 찾아 물고는 저렇듯 달려왔으리라.
스스로의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깊고 끈질긴 배려의 마음이
저 하찮아 보이는 목숨에게도 있었다니...
10년이란 세월이 암시하는 건,
헌신적인 결의를 무디게 하고 지치게 하는
순간순간의 유혹과 장애들이 첩첩이 쌓인 시간이리라.
먹이를 물고온 저놈인들 그런 회의의 순간이
없었으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한 존재의 불운을 외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지 않았을 리도 없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털고, 오히려 더욱 지극정성으로,
하루하루 제 먹이조차도 꿀꺽 침 삼켜 참고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물고 달려왔을 지도 모른다.
이범선씨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있지만
우린, 그 다음 이야기인 우리 스스로의
사랑에 대한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십년 병치레에 효자없고 열녀없다는 말은,
그 십년 동안 참아온 인내의 한계를 말하기에
측은한 마음과 함께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 10년이면 많이 잘 했지뭐. 더 이상 어떻게...
병자 치닥거리만 하다가 살 수 있나, 자기 삶도 있는데...
우린 이렇게 되기 쉽다. 이런 마음에 더 공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도마뱀의 사랑은 무엇인가.
동물이기 때문에 세월을 재는 계산법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사랑이란 시한이 없음을, 어쩌면 저
무모한 삶의 낭비같아 보이는 배려와 열정.
조물주는 저 작은 동물들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한 것일까.
물론 부질없는 의심들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도마뱀은 십년전의 못에 박힌 게 아니라,
최근에 거기를 지나다 실수로 못에 꼬리가
접혀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살아있었던 건
누군가의 봉양 때문이 아니라, 단지 아직 죽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십년 세월은
단지 허구일 뿐이다.
혹시 먹이를 물고온 도마뱀은 그저 그곳에서
잠깐 쉬어가려고 했던 다른 도마뱀이 아닐까?
그저 주위에 다른 놈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을 실어 섣불리 해석한 것은 아니었을까.
도마뱀이 설사 갇힌 도마뱀을 봉양했다 하더라도
두 존재간의 열렬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아니라,
군생하는 도마뱀들이 공조본능에 의해
먹이를 나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때 곁에서 발견된 도마뱀은 여러 마리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모르겠다. 도마뱀이 다른 도마뱀을 위하여
십년 동안 먹이를 날랐다는 사실을
자연과학적인 측면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저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본위로 해석하여
스스로 믿고자 하는 바대로 연출하고 각색하여
이렇게 얘기로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저 캄캄한 공간 속에서 서로 오갔을
두 동물의 따뜻한 응시는, 숨을 멎게 하는 저릿한 감동으로
여전히 남는다. 저걸 달리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인간이 문학노트에 기입했던 수많은 사랑,
고귀한 칭송에 얹어 자랑삼던 그 역사적 사랑.
그 어느 것이 저 담백하고 말없는 사랑 하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성한 하나가
성하지 못한 하나를 위해 쏟아온 끝없는
희생과 배려.
벽과 벽 사이,
그 캄캄한 틈새는
우리가 닳도록 말해온 사랑이란 원어(原語)가
더도덜도 아닌 의미값으로
활활 타오르는
성전이 아니었던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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