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역 공공주택지구 지정 앞두고 전략환경영향평가 공청회 3주간 2번 개최
국토부 "법률적 요건 충족했으나 주민의견 폭넓게 수용하기 위해"
주민 "절차상 하자 지적 피하기 위한 의도..보고서도 과거 자료 기반해 작성"
정부·지역주민간 갈등에 강남구청·서울시 입장도 엇갈려 의견조율 쉽지 않아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서울 노른자터에서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인접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는 것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역주민, 해당 지자체간 갈등이 격화되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정부는 수서역 인접한 곳에 40만㎡ 가까운 부지를 행복주택을 짓기 위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지난해 예정됐던 공청회가 주민반대로 무산된 후 최근 가까스로 열렸는데, 해당 사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는 3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한번 더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한 사업을 두고 같은 내용의 공청회가 두번 연이어 열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서울 강남 한켠 조용한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국토부는 오는 17일 '수서역세권 공공주택지구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과 관련해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고 최근 공고했다. 이 공청회는 수서역 동쪽 부지에 역사를 비롯해 행복주택 1900여가구와 업무ㆍ상업시설 등을 짓기 위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기 앞서 진행하는 법적 절차 가운데 하나다.
행복주택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청년층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다. 정부의 구상대로 수서역 인근에 행복주택을 짓는다면 서울 내 단일 행복주택지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된다.
지난달 29일 열린 공청회는 주민 수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8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미 법률적 요건은 충족했지만 주민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는 차원에서 한번 더 공청회를 진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반면 지역민들로 꾸려진 세곡지역주민연합의 이현기씨는 "지난번 공청회를 끝낼 당시 국토부 측에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중단했다"면서 "향후 공공주택지구고 지정할 때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피하기 위해 한번 더 진행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수서역 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남구청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 2011년 수서역 일대를 개발하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맺었다. 당시 전해 제정된 역세권 개발과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행된 정부의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후 양측간 의견차로 일대 개발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국토부가 지난해 수서역 일대를 행복주택 부지로 낙점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양천구 등 서울 내 다른 곳에서 행복주택을 짓기 여의치 않자 방향을 튼 것인데, 수서역 일대 그린벨트를 개발할 기회를 갖게 된 강남구청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수서역 주변을 포함해 인근 문정지구까지 큰 틀에서 개발계획을 구상하고 있던 서울시는 난개발을 막아야한다며 국토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국토부가 사업예정지로 점찍은 수서역 일대 부지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40% 정도를 갖고 있으며 나머지는 사유지다.
일대 거주하는 상당수 주민이 문제 삼는 부분은 최소한의 기반시설 없이 개발이 추진된다는 부분이다. 세곡보금자리지구에서 수서IC를 잇는 밤고개로는 항상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출퇴근시간에는 1㎞도 안 되는 거리를 지나는 데 수십분이 걸릴 정도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세곡동 일대는 단독가구 600여가구 위주에 인구도 4000~5000명 수준이었으나 대규모 공공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5만명 넘게 살고 있다.
이씨는 "대규모 개발 시 면적이 100만㎡ 이상이거나 상주계획인구가 2만명이 넘으면 학교나 도서관, 문화시설 같은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광역교통대책을 마련해야하는데 앞서 보금자리지구들은 다들 조금씩 못 미치는 수준에서 각기 따로 계획이 수립돼 이제는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행정절차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정책실적을 쌓기 위해 인근 주민의견을 듣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열린 공청회에서는 과거 2010~2011년 당시 모은 자료를 토대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것을 두고 주민측이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패널로 참석한 한 주민은 "5년 전과 비교해 인구가 몇 배가 늘고 환경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그런 부분을 반영치 않고 공청회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과거와 달리 일부 지역에서는 환영받게 된 임대주택이 서울 강남에서만 배척받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사업의 성사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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