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밥상에 푸성귀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얻은 봄나물을 시작으로 늦은 겨울에 씨를 뿌려 얼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두었던 채소의 비닐을 벗겨 내니 따뜻한 봄볕에 쑥쑥 크기 시작했다. 큰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할 봄비이지만 고맙게도 텃밭의 채소가 잘 자랄 수 있을 만큼은 내려 채소 반찬으로 밥상이 푸릇푸릇하다.
여리여리한 부추는 겉절이로 즐겨 먹는데, 베어 먹고 며칠만 지나도 언제 베었는지 모르게 마법에 걸린 듯 쑥쑥 자라난다. 송송 썰어 양념으로 주로 쓰는 실파는 봄철에는 임무가 달라진다. 푸릇푸릇한 실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무치면 설탕을 뿌려 놓은 듯 단맛이 나니 실파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도리가 없다. 또 봄이 되면 단맛이 도는 파로 파김치를 담그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다. 상추와 같이 잎이 넓은 채소는 여름이 제철이라고들 하지만 봄에 맛보는 맛은 또 다르다. 여름 상추와 쌈채소는 다소 뻣뻣한, 성숙한 맛이라고 한다면 요즘 맛보는 쌈채소는 부드러운 맛으로 입에서 살살 녹는다.
취나물도 빼놓으면 서운할 봄나물이다. 부드럽게 데쳐서 된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넉넉히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취나물의 향과 된장이 각별한 조화를 이루며 식욕을 동하게 한다. 고등어처럼 성질 급한 머위는 이제 억세지기 시작하여 잎보다는 여름철에 맛볼 머윗대를 기대해 보지만, 억세지기 전에 부지런히 간장물을 끓여 부어 장아찌를 만들어둔다. 머위장아찌는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게 간이 되어 있으니 풋내 나는 채소들 사이에서 스스로 ‘너희들과 다름’을 과시한다.
봄채소로 차린 밥상에 꼭 더해야 할 찬이 하나 있다. 김치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묵은지다. 붉은 빛깔과 묵직한 맛의 묵은지는 산뜻한 봄채소와 하나가 되어 밥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봄조개를 넣어 달래된장찌개까지 끓여 밥상을 차리면 이것이 바로 ‘봄날의 진수성찬’이다. 언제 오는가 싶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가고 없는 봄, 오늘도 짧은 봄이 주는 귀한 선물로 건강한 밥상을 차린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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