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동자동 '새꿈더하기' 공방, 쪽방촌 주민들 양말인형 직접 만들어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서울 최대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이 동네에 자리한 7평 남짓한 공방에선 매일 불량 양말이 귀여운 인형으로 환생한다. 공방을 맡고 있는 쪽방촌 주민은 박성욱(가명·61)·김정희(가명·47)씨 부부와 이희주(가명·여·59)·정유영(가명·여·56)씨다. 다리가 불편해 잘 걷지 못하고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지 못하지만 다들 약속이나 한듯 출근시간 9시보다 30분씩 일찍 집을 나선다. 이들이 분주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KT위즈 야구단에 캐릭터 양말인형 납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5일 방문한 공방도 문을 닫는 오후 6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과거 쪽방촌 주민들은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서로를 경계했다. 서로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변화가 생긴 건 2층짜리 폐목욕탕을 리모델링해 만든 동자희망나눔센터가 만들어지면서다. 목욕 시설, 화장실 등 기초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이곳에선 매일 다양한 주민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양말인형 만들기도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러다 지난해 양말인형만 만드는 '새꿈더하기' 공방이 따로 생겼다. 취미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한달 30만원을 벌 수 있는 일감이 됐다. 쪽방촌 주민들의 월 평균 소득은 50만원 수준이다. 이중 절반은 근로 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수급자보다 비수급자 빈곤층의 생활이 더 어렵다.
작업반장 박씨는 공방에 오는 일이 더욱 즐겁다. 장애가 있는 아내를 홀로 두고 밖에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아내와 함께 공방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봉제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재봉틀을, 아내 김씨는 양말인형 속을 채우고 방울을 몸에 넣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박씨는 허리 통증이 심해 복대를 차고 일을 한다. 박씨는 "일하는 동안은 안 아프다"며 "일이 끝날 때면 내 몸이 (아픔을) 안다"고 했다.
양말인형에 눈과 코를 실로 박는 역할은 이씨와 정씨가 맡고 있다. 정씨는 젊었을 때 옷을 직접 만들어 입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걸을 수 있는 정씨는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공방에 출근하면서 달라졌다. 정씨는 "집에만 박혀 있었는데 그걸 '방콕했다'라며 우스갯소리도 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기도 하니까 내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공방 활동으로 많이 좋아졌다.
양말인형의 표정도 변했다. 양말인형의 눈과 코 등은 직접 바느질을 하는데 이때 그 사람의 심리 상태가 반영된다고 한다. 처음 만들어진 인형의 표정은 주로 우울하고 어두운 것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그 표정이 밝아지고 더욱 다양해졌다. 이씨는 "일일이 내가 손으로 직접 다 해야 하니까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처음엔 데면데면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식구가 됐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작업반장 박씨의 집에 모여 함께 나눠 먹는다. 요리를 직접 하기보다는 음식을 주로 배달시킨다. 쪽방촌 주거 건물은 공동 취사 시설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 먹기가 힘들어서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앞으로 공방 참여 인원을 더 늘리고 홈페이지를 개설해 정기적으로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수현 소장은 "4명 정도 더 모집해 안정적인 생산이 이뤄지도록 하고 가족처럼 지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