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자신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진실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자기의 비밀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가.
보여지는 자신과 내면에 실존하는 자신을
다르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가.
그걸 우린 가식이나 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삶 속에 불가피한 전략이며 본능적인 자기애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숨긴다.
하지만 우린 다른 사람을 대개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마음 속으로 분류하고 있다.
누가 나쁜 놈이고 미운 놈이고 싫은 놈인지
나름으로 짚어내고 있다. 하지만 저 3종세트가
헷갈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셋 다 부정적인 감정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 '정체'는 꽤 다르다. '극혐'은 어느 쪽일까.
뜻밖에 세번째일 경우가 많다.
나쁜 놈이란 대개 같은 진영에 있지 않은 존재이다.
내가 총구를 겨눈 존재는 모두 나쁘다. 그래야
나의 총구가 선해지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진영에 있지 않은
존재는 위험하다. 나를 향해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함이 나쁨의 본질을 이룬다.
미운 놈이란 대개 내게 방해가 되는 존재이다.
경쟁자는 미운 놈이며 또 반대를 일삼는 자는
미운 털이 박히게 마련이다. 또 내 일이 진행되는 중에
온갖 실수와 어리석음을 발휘하여 문제를 만들어놓는 자도
미운 놈이다. 가장 미운 놈은 밉지 않은 척하며
사람 심정을 긁는 얄미운 놈이다. 귀찮은 놈도
미운 놈이며 못생긴 놈도 미운 놈이며
뭐든지 내 뜻대로 되지 않게 하는 놈도 미운 놈이다.
나쁜 놈은 그 자신이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미운 놈은 그에 대해 가진 내 감정에 본질이 들어 있다.
나쁘지도 앓고 밉지도 않지만 왠지 싫은 놈이 있다.
미운 놈은 이미 어떤 체험이 진행중이거나 사태를 겪고 난 뒤에
결정되는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싫은 놈은 원천적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호감을 철회하면 이 감정이 되기 쉽다.
적극적으로 미움을 가질 만한 동기가 없다면, 그를 회피하고
외면하는 이런 심기가 적당해진다. 싫은 놈은 감정이 깊이 내재해서
그걸 숨기고 그와 동거할 수도 있다. 싫다고 말하지 않고
불쾌감을 경영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싫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의 본질적 양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코드가 맞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아
본능적으로 서먹해지는 사람을 피하고 싶은 그 감정.
싫은 놈이야 말로, 자기를 잘 설명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빈섬.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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