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와 사유재 사이, 은행서비스의 수난과 항변
※이 기사는 돈을 '쩐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나한테
니가 해준 게 뭔데
-수수료-
일명 '소셜네트워크(SNS)시인'이라고 불리는 하상욱 시인이 쓴 짧고 굵은 시(時)야. 니가 나한테 해 준 게 뭔지 모르겠고, 솔직히 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수수료'란 명목으로 돈을 떼어가냐는 원망이 시 속에 녹아있지. 재밌는 건 이 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는 거야. 딱히 받는 것도 없거나, 어찌보면 공공재(公共財)인것 같은 걸 쓰는데 돈을 뜯어간다는 느낌이 '수수료'란 것들에 드는 마음이지. 물론 최근 은행들이 타행 송금 수수료를 올리면서 불거진 금융소비자들의 반발에도 이런 심리가 있어. 내가 내돈을 뽑는데 도대체 왜 은행은 수수료를 가져가냐는 항변이 있는거야.
◆수수료를 구성하는 투자비용들 무엇?
①건물 구입비 또는 임대료 ②사무실 집기 설치 비용 ③관리비 ④전기, 보안, 청소 등의 비용 ⑤직원 훈련비 및 급여 ⑥지점 내 현금 보유 비용 ⑦여러 양식 조제비와 안내장 인쇄비 ⑧컴퓨터 등 시스템 구입 설치 및 유지관리비. 은행에 손님이 방문해서 1만원의 돈을 뽑아가거나 혹은 통장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확인한다고 치면 위와같은 여덟가지 종류의 설치비, 유지비, 인건비 등이 들어. 물론 현금입출금기(ATM기)를 이용해 돈을 뽑아간다면, ATM기 임대료나 전기 보안 청소 등의 관리비 정도가 들겠지.
물론 인건비가 들지 않는 ATM기 등 자동화기기를 쓰는데 수수료를 내야 할까. 은행연합회에서 계좌유지와 관련된 수수료를 받는 이유로 주로 드는 예는 '지하철역 물품보관함 관리비'야. 여기도 일정부분 임대료의 기초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물품보관함 관리자는 보관료를 받지. 이와 마찬가지로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필요할 때 뽑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거지. 물품보관 서비스와 은행 서비스가 크게 다른 점은 은행 고객의 경우 맡긴 돈을 어느 때나 공간적으로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이지. 은행으로서는 막대한 시설투자와 유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어.
그럼에도 수수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은행서비스 자체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은행은 오롯이 '사유재'라고 할수도 없지만, 완벽히 공공재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지. 국책은행 이외의 일반은행은 명백히 영리기업이지. 영리기업인 동시에 공적기관의 역할을 부여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금융은 수익산업이라기보다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발판으로만 인식하다보니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가져간다는 개념 자체가 자리잡지 못한거지.
◆수수료 왜 낮았다가 높아지나?
그간 은행 수수료는 면제 혹은 소액을 받아 왔기 때문에 무료였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 하지만 과거에도 은행 고객들은 수수료를 지불해 왔어. 단지 많은 부분을 면제했거나 아주 소액의 수수료를 받아 왔던게 최근들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거지. 이는 당시에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의 차이인 예대마진이 일정 부분 보장됨으로써 금융서비스 제공에 따른 수수료가 대부분 보전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이에 따라 많은 고객들이 은행서비스는 공짜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하지만 1991년에 시작된 금리자유화에 의해 그동안 유지돼온 일정 수준의 예대마진이 보장되지 않게 되면서 더 이상 금융서비스를 무료 또는 원가 이하로 제공하기 어렵게 됐어. 이 같은 사정에 따라 은행들은 서비스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 즉,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 수수료 신설과 인상 등 수수료 수준의 현실화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은행의 수수료 수준은?
이 때문에 우리나라 수수료는 다른 나라 은행들에 비해 절대액 기준으로 많이 낮은 편이야. 당장 미국과 일본과 비교해봐도 그렇지. 예컨대 창구에서 타행으로 송금할 경우 한국 4대 시중은행 수수료는 500~2000원이 들지만, 일본(UFJ)의 경우 6000~8000원, 미국(BOA)의 경우 1800~5000원이 들어.
우리나라가 은행서비스에 따른 수수료 부과를 덜 한다는 건 '장기 미사용 계좌' 수준만 봐도 드러나. 해외 주요 은행들은 계좌잔액이 일정규모를 밑돌면 수수료를 부과해. 계좌를 갖고 있는것 자체에도 수수료를 떼어가는 셈인 거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계좌유지에 따른 수수료가 없다보니 옛날계좌가 계속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 거지.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109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은행 계좌수는 평균 5.4개로 일본(7.2개)에 이어 세계 2위야. 또 우리나라에서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장기 미사용 계좌'는 전체 수시입출금계좌의 49%인 1억700만개에 달하지. 예치된 금액도 5조5000억원으로 성인 1인당 평균 15만원 수준의 돈이 잠자고 있는 거야.
◆수수료, 안낼 수는 없나?
그럼 수수료를 절감하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주거래 은행을 만드는 방법이 있지. 대부분 은행들은 고객들의 거래 실적에 따라 기여도를 산출하고 이를 기준으로 우수 고객을 선정해 수수료 감면, 환율 우대,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주니까 이런 걸 활용하면 수수료를 전혀 내지않고 계좌를 활용할 수 있어. 거래 기여도 산정 기준으로는 은행별로 다르지만 대개 월급이나 공과금의 자동이체, 예금 및 신탁상품 가입 실적, 대출 및 카드 등의 여신 사용액 등이 기준이 되지.
또한 인터넷ㆍ텔레ㆍ모바일 뱅킹, ATM 등 무인거래용 기기를 많이 이용하면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어. 지점에서 은행직원과 직접 거래하기보다는 인터넷뱅킹, 텔레뱅킹, 모바일뱅킹, ATM 등 무인거래용 기기를 이용하는 방법이지. 이 경우 은행은 창구 직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에게 더욱 저렴한 수수료를 부과해. 예컨대 지점에서 은행직원을 통해 송금할 경우 거래 수수료는 보통 1000∼2000원이지만 ATM은 무료이거나 1000원 정도며 인터넷뱅킹 또한 무료이거나 500∼600원 수준이지. 인터넷뱅킹 등 전자금융거래는 수수료 절감 이외에 거래 시간, 교통비 절감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고객에게 줄 수 있어.
특히 ATM은 영업시간 내에 이용하는 게 유리해. 대다수 은행의 ATM 사용 수수료는 영업시간 중 수수료가 영업시간 후의 수수료보다 저렴하거든. 거래은행의 수수료 우대제도를 잘 파악해 두는 것도 요긴해.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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