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로 희화화했지만 이래봬도 해외에 본부있는 글로벌기업…요즘엔 통장만들기 힘들어서 피해자 집에 직접 찾아가
안녕? 나는 김미영 팀장, 아니 조성목 국장, 아니 이동수 과장, 아니 서울중앙지검 수사관... 그래 요즘엔 다 뽀록났으니 이실직고 할게. 난 '전화금융사기'로 통칭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야. 피싱·파밍·스미싱·큐싱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 내가 한국땅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하고 상륙한지도 어언 10여년. 요즘엔 우리 비밀들이 많이 누설돼 이 업(業)이 레드오션이 되어버렸어. 이젠 시민들이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지 말꼬투리를 잡거나 박장대소하면서 놀려서 내가 오히려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 심지어 "오늘 실적 어떠냐", "밥은 먹고 다니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니까. 이게 다 '개그콘서트, 황해'(사진)에서 우리를 지나치게 희화화해서 그래. 그런데 말이지. 우리 조직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 히딩크 축구팀처럼 우리가 얼마나 정교한 팀워크를 발휘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 알면 깜짝 놀랄껄?
◆보이스피싱 조직이 굴러가는 다섯가지 톱니바퀴
보이스피싱 조직은 크게 전화를 거는 ⓛ콜조(또는 총책), ②보이스피싱연구원, ③인출모집책, ④통장모집책, ⑤개인정보탈취팀. 이렇게 다섯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야. 우선 콜조는 보이스피싱의 '본부'라고 볼수 있는데 개인정보탈취팀이 구해온 전화번호를 받아 한국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역할을 하지. 그래서 콜조본부는 해외에 있어. 한국에서 중죄를 지은 뒤 기소중지가 내려져 한국으로 못 돌아오는 사람들이 여기에 가담하는 경우가 꽤 있어. 또 이 중엔 한국에 내려와 있는 인출모집책의 가족을 볼모로 잡고 보이스피싱 조직을 전두지휘를 하기도 해.
두번째로 중요한 조직. 인출모집책은 한국 지부 역할을 하는 곳이야. 해외에 있는 콜조와 호흡을 맞춰서 한국에 거주하는 사기범들을 이끄는 곳이지. 인출모집책 리더는 대게 해외콜조의 교육을 받고 온 사람이야. 이들은 대포통장으로 들어온 돈을 인출하는 역할을 하지. 사기에 넘어간 피해자가 대포통장에 돈을 입금하면 해외에 있는 총책에게서 지시가 떨어져. 어느계좌에 돈 얼마가 입금됐으니 돈을 찾으라는 지시지. 그럼 보안이 허술한 현금지급기를 물색해서 거기서 대포통장이 입출금이 잘 되나 검사를 하는 역할을 여기 인출모집책에서 하는거야. 특히 이들은 경찰에 붙잡힐 위험이 크기 때문에 조심조심 움직여. 실제로 지난해 12월 경기화성에서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금 5000만원을 빼가려던 인출모집책들이 붙잡힌 적도 있었지.
보이스피싱에서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건 '통장모집책'이야. 우리 사기의 수단인 대포통장을 구해오는 조직이지. 대체로 통장모집책 리더와 인출모집책 리더는 자주 만나 대포통장 물량을 예약하고 구입하기도 하지. 대포통장은 1개당 100만원 정도에 양도되는 걸로 알려져있어. 통장모집책들은 가령 '개인(통장) 1개당:₩100,000 고가에 매입합니다. 신용불량자 가능, 남여 모두 가능, 주민증 앞뒤 복사 1부.'와 같은 광고를 붙여놓고 다니면서 대포통장을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역할을 해. 수법은 다양해. 공원이나 기차역 버스터미널에 있는 노숙자를 꼬드겨 대포통장을 만들게 하거나, 노인정에 찾아가 통장을 사는 방법, 작은 사무실을 빌려 구인구직 광고를 내고 면접온 취업준비생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통장을 사는 방법, 경마장이나 카지노 랜드에서 소액대출 명함을 붙여놓고 통장을 요구하는 방법 등 다양하지. 이밖에 개인정보탈취팀은 해킹과 설문지 조사를 통해 이름과 전화번호를 도용하는 역할을 하고 보이스피싱의 방법을 연구하는 팀도 따로 있으니까, 우리 너무 껌으로 보지 말라고!
◆통장 계설 까다로워진 뒤로 더 대범해진 수법…속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통장모집책' 구성원들이 일하기 크게 힘들어져버렸어. 금융감독원에서 대포통장을 근절하려고 계좌개설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지연인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야. 예전엔 신분증만 있으면 통장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작년 7월부터는 재직증명서, 공과금 고지서 등 각종 증빙서류가 있어야 통장을 만들 수 있도록 조처하면서 우리의 일이 어려워진거지. 실제로 금감원이 조사한 대포통장 수는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8984건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월평균 5847건으로 감소했어.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월평균 3689건을 기록하며 급감하고 있는 추세야. 거기다 작년 9월부터 기존 30분 지연인출제가 적용되는 기준금액을 3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췄지. 우리가 대포통장에 돈을 입금받더라도 30분 지나야 돈을 찾을 수 있는데, 보이스피싱 낌새를 눈치챈 피해자들이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야.
대포통장은 그 자체로 우리 수익모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범죄수단이었어. 우리가 해외에 거주하면서도 사기쳐서 받은 돈을 우리 손으로 끌어올수 있게 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대포통장이었던 거지. 하지만 통장 개설 자체가 멀쩡한 사람도 어려울 정도로 까다로워지면서 돈을 끌어오는 수단 중 하나가 폐쇠되 버린거지. 그래서 우리 보이스피싱 연구팀에서 생각해낸 묘안이 '침입절도형' 범죄야. '찾아가는 보이스피싱', '주거침입과 보이스피싱의 융합'이라고 들어는 봤어? 수법이 더 대범해진건데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검찰 수사관인데 대포통장 도용사건에 연루됐다. 돈을 찾아 집에 놔둬라"고 말한 뒤 피해자를 외출하도록 유인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돈을 훔쳐서 달아나는 거야. 이 외에도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라고 해놓고 빼가는 경우도 있지. 누가 이런 범죄에 속겠나 싶겠지만 막상 당해보면 껌벅 속아넘어갈 수 있지.
그럼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는 몇가지 방법 알려줄게. 일단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전화가 오면, 끊고 걸려온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해보는 게 좋아. 내가 말했지. 콜조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대포폰을 사용해 전화를 걸어. 그래서 발신이 안되는 전화로 통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걸려온 번호말고 해당 기관의 대표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야. 만약 피해를 인지했다면 바로 112나 해당은행 콜센터, 금융감독원 1332로 신고해야해. 혹시 대포통장으로 돈을 이미 보내버렸다면 바로 해당 은행 콜센터에 전화해 지급정지를 요청해야하지. 30분 내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사기범이 돈을 빼갈 수 없어. 또 아직도 통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통장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사기꾼이라고 인식하는게 좋아. 아,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걸 죄다 설명하고 있지? 나도 이제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 새출발해야하나봐.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