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한민국 미생으로 산다는 것] 직장살이 '忍生'

시계아이콘01분 58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시집살이처럼 참고 또 참아야


[대한민국 미생으로 산다는 것] 직장살이 '忍生'
AD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시 목동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식품 회사 영업사원 2년차인 지동훈(가명ㆍ28)씨는 차 트렁크를 열고 6kg짜리 온수통과 1000개들이 종이컵 한박스, 신제품 판촉물 500장을 카트에 옮겨 실었다. 오늘만 세번째 마트 방문이다. 4시까지 사무실에 가야하는데 들릴 곳이 하나 더 남았다.


마음이 급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찰나, 카트 머리를 들이밀어 간신히 잡아 탔다. 그가 관리하는 서울 시내 대형마트는 12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매장 가공식품 담당자를 상대한다. 연세대학교 2008학번.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고향에서는 인재라고 소문난 지씨다.

그러나 직장에서 만난 '갑(甲)'들 앞에서 그는 병아리 영업사원일 뿐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잃어버렸는데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거나 예약해놓은 음료 판촉행사 구역을 경쟁사에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다 경험이겠거니" 정신력으로 버텨온 지씨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한방'을 맞았다.


시음 행사장에 낑낑대며 온수통을 나르고 종이컵을 줄 세우고 있는데, 옆에서 상품 진열을 하던 마트 직원 아저씨가 느닷없이 반말로 물었다. "고졸 출신이야?" 지씨는 "때론 내가 택배 사원인지, 영업 사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런 회의감 때문에 퇴사하는 동료들도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광화문의 한 IT 기업. 사내 여자화장실에선 입사 1년차 이미지(가명ㆍ27)씨가 거울을 앞에 두고 서 있다. 이씨는 "아에이오우"를 연발하며 얼굴 근육을 풀었다. 눈으로는 보고서 내용을 반복해서 훑었다. "잘할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 최면을 걸며 본부장실로 향했다.


이씨는 입사 6개월 무렵부터 임원 보고를 직접 하고 있다. "신입이니까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다. 업무 특성상 자신이 담당한 부분은 계획ㆍ진행ㆍ성과까지 모두 책임질 뿐 아니라 임원 보고도 직접 해야 한다. 이씨는 애플리케이션(앱)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포털의 배너 광고, 파워 블로거와의 연계 등을 통해 앱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이다. 그녀는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임원 보고를 해야 할 때도 있다"며 "처음에는 신입이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싶은 부담감 때문에 보고 전날 잠을 설치곤 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이씨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나 지금 보고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우황청심환 있는 사람?" 그녀의 동기가 동기 카톡방에 SOS를 치고 있었다.


[대한민국 미생으로 산다는 것] 직장살이 '忍生'


'직장살이'라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와 윗사람의 꾸중, 상명하복 조직문화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집살이처럼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참다 보면 병도 든다.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직원교육을 담당하는 신입사원인 김명희(가명)씨는 "다른 부서 과장, 부장으로부터 교육 일정을 왜 안 바꿔주냐, 이 수업은 꼭 들어야 하는 거냐 이런 식의 불만을 자주 듣는다"며 "이유를 설명하다보면 나중에는 꼭 내가 혼이 나고 있더라"고 토로했다. 이제 겨우 27살인 그녀는 얼마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낭종에 위염 장염 등 여섯 가지 이상의 소견을 받았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직장을 관두기도 한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연수원까지 다녀온 후 입사를 포기하려 했거나, 실제로 포기한 신입사원은 100명 중 34명에 달했다. 지난해 7월 CNN은 한국의 야근 문화를 다뤘다.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영업을 차린 한 젊은이는 인터뷰에서 "만약 신입사원이 1년에 5번 이상 휴가를 간다고 하면 미쳤다고 한다"며 "더 이상 할일이 없는데도 상사가 퇴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기사거리로 다뤄지는 것이 우리나라 신입사원의 일상이다. 그래도 '비빌 언덕'은 있다. "거래처에서 내내 시달리고 왔을 때 선배가 소주 한잔 사주면서 경험담을 들려주면 힘이 나요." "몸이 아플 때 동기가 대신 내 일을 처리해준다며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눈물 날 뻔 했어요" "취업하고 처음 맞는 설엔 고향집에 빈손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되니 좋아요" 이 시대 미생(未生)들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0914:18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손해 보고도 집못팔까" 걱정 덜어준다…지방 미분양 '환매보증' 첫도입

    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수분양자에게 일정 가격으로 되팔 권리를 보장하는 '주택환매 보증제(가칭)'를 처음 도입한다. 준공 후 미분양 1가구1주택 특례 가액기준을 6억원에서 7억원으로 상향하고, 인구감소지역 세제 특례와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 지원도 연장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3기 신도시 1만8000가구를 포함해 올해 5만가구 착공에 나선다. 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 26.01.0914:05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디지털자산 제도화 본격화…스테이블코인·현물 ETF까지 제도권 편입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낸다.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법안) 입법을 통해 발행·유통·거래 전반을 포괄하는 규제 틀을 마련한다. 또한 디지털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9일 오후 '2026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마련 등 디지털자산을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국장 장기투자 촉진 ISA 신설…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

    정부가 국내 장기 주식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출시한다. 투자 시 납입부터 배당까지 '더블 혜택'을 주는 국민성장펀드·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펀드도 출시한다. 국내외 산업과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한국형 국부펀드'는 20조원 규모로 출범하기로 했다.9일 재정경제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60

  • 26.01.0914:00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국장 장기투자 촉진" 세제혜택 늘린 '생산적금융 ISA' 신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해온 이재명 정부가 국장 장기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생산적 금융 개인종합투자계좌(ISA)'를 신설한다. 일정소득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형 ISA'는 물론, 비과세 200만원이 적용되는 기존 ISA 대비 세제혜택을 대폭 확대한 '국민성장ISA'도 선보일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9일 오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공개했다. 생산적 금융 기치 하에 첨단

  • 26.01.0914:00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7월부터 24시간 외환시장 개방…MSCI선진지수 편입 박차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해 원화 국제화에 나선다.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규제를 정비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숙원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은 9일 오후 '2026년 경제성장 전략'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내용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외환·자본시장 종합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