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처, 옛 소방방재청 시절 용인대 김태환 교수팀 용역 보고서에서 확인돼..."나머지 절반도 파편막이 수준, 화생방 방호는 4.62%만 가능"...천문학적 예산, 관리 문제로 손 놓고 있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정부가 적의 공격에 대비해 구축한 민방위 대피시설의 절반 이상이 실제론 일반 폭탄도 견디지 못하는 등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남북한의 군사대립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국민 안전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안전처(옛 소방방재청)가 2013년 용인대 김태환 교수팀에 의뢰해 작성한 '민방위 사태에 대응한 대피체계 구축 및 대피시설의 운영관리 기술 개발' 용역 보고서는 전국에 산재한 2만3000여개 민방위 대피시설 중 실태 파악이 가능한 1만4014개를 대상으로 방호성능을 조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피시설의 절반에 가까운 46.07%(6456개소)가 핵공격, 생화학 무기는 커녕 재래식 폭탄 공격도 방어하기 어려운 '무용지물'이라고 분석했다. 나머지 중에서도 49.3%(6910개소)는 재래식 고폭탄의 파편만 막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필요한 생존 장비ㆍ식량ㆍ식수 등을 갖춰 민간인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곳은 4.62%(648개소)에 불과했다.
전국에 산재한 2만1000개(2010년 기준)의 대피시설 중 소유주의 무응답ㆍ자료 불충분 등의 이유로 조사에서 제외된 나머지 시설들도 대부분 방호성능이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론 전국 대피소의 3분의 2 가량이 '무용지물'이라는 분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용역 보고서는 또 방호 성능 뿐만 아니라 대피시설에 민간인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대책도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6일 정도도 생활이 가능해야 하지만 식량 등 생존을 위한 기초 물품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전국에 정부 지원 시설 168개, 공공용 지정 시설 2만3365개 등 총 2만3533개의 대피시설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중 서해 5도를 비롯한 접경 지역 15개 시군에 설치된 주민대피소와 각 시ㆍ도청에 설치된 '충무용 지휘시설'을 제외하곤 비상장비ㆍ식수ㆍ방독면 등 화생방 방호 시설을 갖춘 곳은 전무하다.
2011년 연평도 포격사태 후 서해5도에 매년 12개(올해 22개)씩 구축하고 있는 대피소를 제외하면 추가 지정ㆍ건설 계획도 없다. 정부는 이들 대피소에 방송 장비 일부만 갖춰 놓았을 뿐이다.
김태환 교수팀은 이에 대해 "대피시설들은 정확히 어떤 위협을 방호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기준도 없고 방호 성능을 식별할 수 조차 없었다"며 "공공용 대피시설의 방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구축 기준을 마련하고 성능개선과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제대로 된 대피소 구축 사업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천문학적인 재원 문제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화생방 방호 성능을 갖춘 대피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선 인구 100명당 약 7억원씩, 서울시만 따져도 약 70조원이 소요된다. 그나마 토지 구입비ㆍ관리비ㆍ운영비를 제외한 순수 시설비만 따진 액수다.
서울시 관계자는 "핵 폭발의 경우 지하 대피소에서 1차적으로 열과 폭풍을 피할 수 는 있지만 낙진ㆍ방사능은 막을 수 없고, 생ㆍ화학무기에는 모든 대피소가 무방비라고 보면 맞다"며 "적의 공격이 예상되면 신속히 해당 지역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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