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난 한국은행 안에 설치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금리, 바로 '기준금리'다. 한은이 일반은행과 거래할 때의 금리로, 금융시장의 각종 금리를 지배하는 대표 선수다. 한은은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내 몸값을 낮추기도 하고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내 몸값을 올리기도 한다. 만약 경기가 불황일 때 내 몸값을 낮춘다면 시중에 돈이 풀리게 된다. 그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원활해져 투자가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생산활동이 확대돼 일자리도 는다. 반대로 경기 과열로 물가가 오른다면? 몸값을 올려 시중 자금을 조절한다. 이게 나의 공식적인 행보다. 내가 위로 가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 흐름이 바뀌니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다 옛날 일이다. 요즘 난 천덕꾸러기가 됐다. '행보 공식'이 깨진 게 결정타였다. 한은은 불황 탈출을 위해 작년 8월 이후 내 몸 값을 1%포인트나 낮췄다. 지금 내 몸값은 연 1.5%. 역사상 가장 낮다. 연 5.25%였던 2008년 8월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떨어진 건 오로지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사실 말하기 부끄럽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8월과 10월의 두 차례의 인하로 2014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03%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주열 한은 총재가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예전과 달라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한탄했겠는가. 그나마 1.3%를 기록한 올 3분기 GDP 성장률을 위안으로 삼지만 여기에도 나보단 추경 효과가 더 컸다. 파격적으로 몸값을 낮춘 덕에 유동성 공급 확대의 환경은 조성했지만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개선시키진 못했다. 3분기 제조업의 성장이 전기대비 1.1%포인트 떨어진 0.1%에 그친 것도 그래서였다.
가계부채 얘기가 나오면 더 할 말이 없다. 꼭꼭 숨고 싶다. 올 9월 말 기준 가계 빚은 1166조374억원이 넘는다. 작년 3분기 말과 비교해보면 1년 새 109조5959억원이나 폭증했다. 연 1.5%란 내 몸값이 만든 결과다. 이 속도라면 올해 말 1200조원도 넘을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면목이 없다. 물론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작년 8월 금리 인하에 맞춰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풀린 게 화약고가 됐다.
그나마 금융당국이 소득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 한시름 더나 했다. 그런데 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대출 규제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며 정부부처 내에서 이견이 표출되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GDP를 끌어올리고 있으니 섣불리 손보기 쉽지 않을 만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를 넘어섰다는 변치않는 그 사실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도 이제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 더 늦췄다간 화약고가 터질지 모른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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