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계파갈등·포퓰리즘 등 現정국 쇄신할 YS 메시지 되새겨야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나는 의회민주주의 신봉자다. 민주주의를 향한 나의 신념과 소신은 바꿀 수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79년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했을 때 남긴 말이다. 그는 "국민과 더불어 떳떳이 가게 됐으니 여한이 없다"며 최연소 당선ㆍ최다선(7선) 의원이자 야당 총재로서의 자신감과 담담함을 드러냈다. 김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이 자신을 탄압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국 자신을 의회로부터 강제 추방시켰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야 정치권에서 그의 의회민주주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은 의회주의의 원리인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정치권에 큰 울림을 준다.
그러나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맞은 정치권의 현주소를 보면 '합(合)'을 추구했던 그의 의회주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여야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과 평가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당 대표 간 신경전도 펼쳐졌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독재를 찬양하면서도 독재와 맞섰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이율배반의 정치를 보고 있다"고 대독 발언문을 통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도 24일 김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향해 "정치적 아들이 아니라 유산만 노리는 아들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여야는 어렵게 성사된 합의를 깨뜨리는 행태를 보여주는가 하면 책임 소재를 놓고서도 날선 공방을 벌이기 일쑤다. 이달 초 내년 선거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합의에 실패해 결국 법정시한을 넘긴 것이 대표적이다.
야당은 걸핏하면 국회 의사 일정에 '보이콧'을 선언하며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 최근에도 정부의 한국사 국정 교과서 추진에 불복하며 장외 투쟁을 선포해 정기국회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여당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노동개혁 5개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원 증원을 시도하다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계파 간 내홍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20대 총선을 두고 공천권 다툼으로 여야 할 것 없이 당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기간을 맞아 지나친 정쟁이나 충돌을 자제하기로 했다. 여야 의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국회 분향소를 방문하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이젠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