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시티(City), 스카이라인(Skyline), 마천루…. '도시'라고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도시는 이렇게 물리적인 교환만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자본, 욕망, 언어 등 비물질적 요소들이 수없이 교환되는 생태계다. 특히 문자나 기호 같은 거리언어에는 도시의 본성이 깃든다. 문자와 도시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전시가 11일에 시작됐다. 올해로 네돌을 맞는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옛 서울역에서 진행된다. 이곳에 가면 문자 디자인을 통한 도시에 대한 해석, 서울시내 동네 서점 지도, 폐기되는 책을 활용한 벽돌 가림막 등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는 22개국 91명이다. 이들은 '( ) on the walls', 'SEOUL( )SOUL', '종로( )가' 등 '도시와 문자'와 관련된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함께 작업하면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시도했다. '도시와 문자'와 관련된 주제를 열 가지 프로젝트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디자이너 김두섭 씨는 건물에 흔히 쓰이는 하얀 타일로 채운 벽을 전시장에 세웠다. 수많은 정사각형 블록에 음영이 서로 다른 글자들이 숱하게 적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수묵으로 농담을 표현해 그린 그림같다. 전체 모습은 아파트 스카이라인을 연상시킨다. 글자들은 부동산 관련 법령과 기사에 쓰인 글귀다. '도시와 문자...ㅋㅋㅋ'라는 제목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 특별전 감독은 영국의 전시디렉터 아드리안 쇼네시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 여섯 명과 함께 작업한 대형 포스터를 내놓았다. 쇼네시는 영국 왕립예술대학 교수이자 디자이너, 저술가다.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를 비롯, 여러 책을 썼다. 학생들은 자신이 사는 뉴욕, 도쿄, 런던, 시카고, 멕시코, 로스엔젤레스 등의 도시에서 문자들을 추출해 이를 디자인으로 형상화했다.
'SEOUL( )SOUL'을 제목으로 한 프로젝트에는 큐레이터 이기섭 씨가 서울의 동네서점을 문자로 맵핑했다. 도시를 대표하는 엽서와 지도라는 매체로 동네 서점의 현황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씨는 "대형 온라인 서점 때문에 위축된 동네서점 가운데 여전히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사회과학서점, 예술서점, 동양학서점 등 그 테마도 다채롭다. 서울에는 현재 30년 이상 된 동네서점이 400여개 있는데 이번에 쉰네 곳을 꼽아 소개했다"고 했다.
'책벽돌' 프로젝트는 파주출판단지의 폐기된 책들을 활용했다. 파주에 살면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디자이너 최문경씨가 기획을 맡았다. 최씨는 "파주출판도시는 문자의 도시다. 이곳에서 매해 책이 450만권 발간된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책이 버려진다. 폐기된 책 2000권을 각 출판사에서 기증받아 도시의 상징이자 집을 이루는 '벽돌'로 만들었다"며 "벽돌은 분쇄한 폐기 책 60%와 모래 30%, 시멘트 10%로 구성된다"고 했다.
아시아 도시의 문자를 주제로 한 전시도 있다. 홍콩, 대만, 베이징, 방콕, 서울, 호치민, 싱가포르 등 일곱 도시의 다양한 풍경이 TV에 담겼다. TV마다 사진이 60장 이상 돌아간다. 동시에 가동되는 영상은 각 도시들이 하나의 직조물을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를 기획한 일본인 그래픽 디자이너 고토 테츠야는 "'아시아'라는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어떤 사람은 대만에서 일본까지라고 보기도 하고, 스포츠로 따지면 호주가 포함되기도 한다. 아시아라는 개념에 대해 고정된 틀을 갖지 않고 디자이너들에게 익숙한 도시 풍경을 담아보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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