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없는 이들도 믿음은 있다? 믿음 없는 그들이 신앙을 가졌다?
테러리즘 살육 일삼는 IS는 뭘 믿는 것일까
정치를 신앙으로 삼은 자는 과연 믿음직한가
'잘못 신성화된 정치'가 만들어낸 나치의 광기를 기억하는가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배경이나 행동 동기를 명확히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켜켜이 쌓인 중동지역 내전사(史)와 탈냉전시대 이후의 복잡해진 국제정세가 얽히고설켜 현재에 이르렀다는 설명이 주를 이룬다.
서구의 시대구분을 따르자면, 중세를 거쳐 근대로 접어들면서 종교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신정(神政)일치를 내세우는 IS는 시대를 거스르는 퇴행적인 현상의 한 단면으로 보는 게 맞을까.
영미권 윤리철학분야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이먼 크리츨리 미국 뉴스쿨대 교수의 연구는 이 같은 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는 종교와 정치, 나아가 폭력간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역사적 맥락에 천착하고 있다.
제1 장의 첫 번째 소제목은 저자의 생각을 간결하게 드러낸다."왜 정치는 종교 없이 실천될 수 없는가? 이것이 왜 문제인가?" 종교가 맹위를 떨친 중세시대를 떠올리면서 언급하는 게 아니다. 근현대 사회에서도 정치적 실천에는 믿음이 함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때 믿음은 종교적인 의미의 신앙 혹은 신념과는 구별된다. 현실적인 지배체제와 종교 지도자를 구분하기 힘들었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이후 이성 중심의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수백 년간 세속화 과정이 진행됐지만, 믿음이라는 요소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를 "신성화의 탈바꿈"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이러한 견해는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저자가 첫 장을 장 자크 루소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한 데서 알 수 있듯, 18세기 루소의 작업을 "근대의 정치와 종교 사이의 관계를 숙고할 때 본보기가 될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부차적인 부분으로 여겨지는 시민종교의 개념 역시 크리츨리의 맥락에서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카를 슈미트나 하이데거, 레비나스, 바디오, 지젝 등 근현대 철학자의 사상이나 삶의 궤적에서도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저자는 묻고 답한다.
책의 주된 흐름은 20세기 전체주의 움직임을 연구했던 이탈리아의 파시즘 연구자 에밀리오 젠틸레의 '정치의 신성화'라는 키워드와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옮긴 문순표씨에 따르면, 정치의 신성화를 주장한 젠틸레는 신정분리가 이루어져 사적인 영역으로 물러났던 종교 혹은 종교적인 관습이 다시 정치체제라는 공적인 영역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주목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6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 연설에서 "오늘의 다원적 민주주의 상황 속에서 정치와 신앙을 어떻게 융화시킬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믿음 혹은 신앙이 현실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따져본다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역사 교과서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를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양분된 한국 사회에서도 저자의 이러한 분석틀은 큰 오차 없이 들어맞는다. 역사책을 쓰는 건 국가여야 한다는 특정 정치집단의 판단은 그 자체로 믿음 혹은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모양새로 읽힌다. 이런 판단과정에서는 합리적인 이성이 발붙일 틈이 없다. 자칫 밉보이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처연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책의 대부분이 현상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면 '결론'이라고 한 마지막 장의 제목도 눈길을 끈다. "네가 믿는 대로 될지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글귀는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어다.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실체에 기대지 않는 '믿음 없는 믿음'이 정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얘기다.
이 책을 쓴 사이먼 크리츨리의 이력은 평범치 않다. 성인으로 접어들 무렵 철학공부를 시작해 영미권 분석철학은 물론 윤리학이나 대륙철학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전까지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죽은 철학자들의 서'를 비롯해 그간 펴낸 책들의 면면을 보면 대중을 위한 입문서 성격의 책이 대부분이다.
책의 원제에도 들어 있는 '믿음'이라는 말은 faith의 번역이다. 문맥에 따라 '신앙'이라는 단어가 더 그럴듯한 의미를 전달할 때도 있다. 이번 한글판에서는 맥락에 따라 각기 원어를 표기하면서도 읽기 자연스럽게 구분하는 등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눈에 띈다.
통상 책을 읽을 때 뒤쪽에 따라붙는 해제를 중히 여기지 않는 편에 속한다. 저자 혹은 역자가 가리키는 곳보다는 독자 나름의 직관이나 식견에 따라 풀어내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다양한 철학자의 사유를 성큼성큼 건너 뛰어가며 소개하는 탓에 저자가 의도한 생각의 흐름을 좇기 쉽지 않는 부분도 꽤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해제를 간단히 훑고 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지은이가 쓴 서문을 미리 꼼꼼히 챙겨야하는 건 이 책도 마찬가지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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