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그 치맛자락에 붙들린 내 눈길 / 이런 내 기도에 의미가 있을까 / 그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가 / 이 땅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자 / 오, 루시퍼! 단 한 번만 그녀를 만져볼 수 있게 해 주오,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의 노래 '아름답다' 중)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노트르담 대성당 주위를 떠도는 아름다운 집시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다. 때는 15세기. 귀족들의 축제와 환락, 폭도들의 반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끊이지 않던 어지러운 시기다. 꼽추 콰지모도와 대주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는 춤추고 노래하는 자유로운 영혼 에스메랄다를 끝없이 갈구한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발표한 같은 소설이 원작이다. 제목은 같다. 1998년 뤽 플라몽동이 장편 열한 편을 뮤지컬 가사로 바꾸어 파리 팔레 데 콩그레 극장에 올렸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뮤지컬이란 장르를 프랑스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프랑스 대중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뮤지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인들에게 뮤지컬은 미국의 세속문화로 읽혔다. 그 시선을 거두고 프랑스에 거대한 뮤지컬 바람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다. 자국에서만 400만 관객을 모았다.
그 바람은 곧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캐나다, 영국, 러시아,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를 넘어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에서 사랑받고 있다. 15세기 프랑스 이야기를 담은 20세기 뮤지컬이 21세기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비결은 뭘까. 지난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주연 배우들을 만나 물었다.
'불법 이민자들의 왕' 클로팽 역할을 맡은 루크 메빌은 "각 캐릭터가 15세기에도, 21세기에도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클로팽은 '국경 없는 시대, 난민의 고향은 어디인지, 그들에게 국가는 없는지' 묻는다"고 했다. 1998년 초연 멤버로 800회 이상 무대에 서온 그는 휴식기를 국제난민기구에서 봉사하며 보내곤 한다. 그는 "올해만 해도 5000만 명이 넘는 난민과 불법이민자들이 발생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교육이나 자본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며 "클로팽을 연기할 때 그들을 직접 목격하며 느낀 바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에스메랄다를 마음에 품은 세 사람이 던지는 질문도 각기 다르다. 맷 로랑이 맡은 꼽추에 절름발이, 애꾸눈 콰지모도는 '진정한 추함과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외적인 추함은 사랑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지' 묻는다. '미치광이들의 교황인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볼 때면 난 마치 지옥을 걷는 기분' 같은 가사들이 콰지모도의 기분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대주교 프롤로(로베르 마리엥)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성직자의 운명. 하지만 새벽녘 달빛 아래 춤추는 에스메랄다에 이내 매혹된다. 그를 '마녀'라 칭하며 애써 부정해보지만 '너를 사로잡고 있는 악마가 신을 향한 내 눈을 가리는가', '너로 인해 눈을 뜬 욕망에 갇혀 저 하늘을 더 바라볼 수 없어', '그녀를 향한 욕망은 죄악인가'라고 노래하며 괴로워한다.
에스메랄다에 푹 빠진 근위대장 페뷔스(제레미 아멜린) 역시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에겐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가 있다. 그러나 이내 신성한 결혼의 언약을 깨버리고 '소금기둥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노래한다. "검은 너의 두 눈, 유혹의 눈빛,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지. 무지개처럼 치마를 휘날리며 춤추는 넌 내게 마법을 걸지. 그 누가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있을까" 페뷔스는 '새로이 나타난 사랑을 찾아 떠나는 건 죄악인지' 관객에게 묻는다.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질문과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 외에도 '노트르담 드 파리'의 매력으로 꼽히는 요소들은 무수히 많다. 이탈리아 대중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대표적이다. 앤드류 웨버로 대표되는 영미권 뮤지컬 넘버와는 다른 느낌의 곡들이 나온다. 노래가 역동적이고 웅장하다. 한 곡 안에서 단조가 장조로 전조되는 기술적 변화들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러나 대중작곡가가 만든 곡답게 관객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귀에 박혀 여운을 남긴다.
'아름답다'의 경우 프랑스 차트에서 44주간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맷 로랑은 "제일 처음 만들어진 곡"이라며 "모든 주연들이 모이는 곡이라 의미 있으면서도 매력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서곡인 '대성당들의 시대'는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할 정도로 유명하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과 함께 TV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뮤지컬 넘버다. 가수 아이유가 불러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안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뮤지컬의 가장 큰 특성이 배우와 댄서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된다는 점이다. 댄서들은 아크로바틱, 서커스, 비보잉, 현대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안무를 뮤지컬 무대 위에서 펼쳐낸다. 맨몸으로 성벽을 타고 종에 거꾸로 매달리는 퍼포먼스도 한다. 클로팽의 '거리의 방랑자들'이 나올 때는 배우보다 더 앞에 나와 현란한 몸짓을 하고 페뷔스가 '괴로워'를 노래할 때는 장막 뒤에서 그림자 연기만으로 배우의 무대를 뒷받침한다.
1999년에 시작해 벌써 16년째 1000번 이상 콰지모도 역을 맡아온 맷 로랑은 "한국에 많은 팬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라며 "초기 멤버인 루크 메빌과 내가 새로운 멤버인 제레미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11월 15일까지 블루스퀘어. 6만~16만원. 문의 02-541-6236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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