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 해 동안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제와 화두를 정리해 보면 세대 갈등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은 전 연령층이 마찬가지이지만 어렵고 힘든 시절이 너무 오래도록 이어지니까 서로 탓을 하며 집안싸움이 벌어진 꼴이다.
정권 교체로 산업화 세대가 사회 전면에 나서면서 세대 갈등이 시작됐다. 이는 복지 논쟁으로 이어졌다. 예산 여건이 빠듯한 가운데 대선 공약인 기초연금을 확대 실시하는 과정에서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이 축소됐다. 복지 예산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의 신호탄이었다.
여기에 영화 '국제시장'이 불을 당겼다. 한국전쟁, 월남전, 광부 파독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가장들의 애환을 표현한 영화였다. 하지만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는 대사는 산업화 세대에겐 자부심이었지만 취업난에 고통받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겐 기성세대의 자기 합리화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기본과제로서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세대 갈등의 골은 깊어진 느낌이다. '노사정 대타협 우리아들과 딸이 애타게 기다립니다' '청년일자리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갑니다' 등의 공익광고 카피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 개혁을 하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청년 실업 문제의 원인을 기성세대에 돌린다는 인상을 줬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한 신문사 논객의 '늙는다는 것은 죄가 아니다'는 칼럼으로 절정을 이뤘다. '우리 세대를 죄인 취급하면 화산처럼 분노할지 모른다'며 기성세대의 입장을 과격하게 대변하는 칼럼에 대해 '님은 열심히 살면 뭔가 나아지라는 희망이라도 갖고 살았지만 우리 앞에는 절망뿐입니다'라는 패러디가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의 밥그릇 싸움이 된 꼴이다. 영화 '사도'도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게을리하니'라며 나무라는 데자뷔 같은 대사가 이를 말해 준다.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도 알고 보면 세대 갈등의 한 단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일자리, 이념, 복지, 노령화 모두 이슈엔 세대 갈등이 잠복해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시대에나 세대 갈등은 존재했다. 1970년, 44세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45세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세대 교체를 주창했다. 심지어 1964년 한일협상을 반대하던 이른바 6ㆍ3 세대 대학생들은 '50세 이상은 모두 물러나라'고 전면적 세대 교체를 외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정권 교체는 예외 없이 세대 교체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이른바 386 세대의 등장, 이명박 대통령과 63 세대, 박근혜과 유신 세대 등 정권 교체는 세대 교체(회귀)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그렇다면 세대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세대 갈등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 사회가 변화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생긴다. 바뀌는 것 없이 아버지가 살던 세상과,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똑 같다면 세대 갈등이 생겨날 이유가 거의 없다.
사는 세상이 달라 현실 인식에서 차이가 나며 세대 갈등도 생겨난다. 세대별로 애환이 있지만 그 차이는 크다. 고생만 한 세대도 있고 혜택을 누린 세대도 있다. 청년 세대들은 부모 세대들의 배고팠던 시절과 열심히 살았던 과거를 잘 알지 못하며, 장년층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잘 먹고 살지 않느냐고 생각할 뿐 미래가 없는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시대를 바꿔서 살아보라고 하면 어떨까. 미래가 잘 안 보이는 세상이 더 끔찍하지 않을까.
급격한 변화가 일상이 된 오늘날 세상 속에서도 한국의 경우 더 가파른 변화를 겪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시간에 이뤄냈고, 생각의 속도로 진행되는 정보혁명을 겪고 있다. 고도 성장시대를 마감하면서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 숨 가쁜 세상이다. 모든 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세대별 현실 인식이 당연히 다르고 세대 갈등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대 간 갈등이 지나치면 결국 누워서 침 뱉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세대별 인식 차가 아니라 먹거리를 찾지 못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파이를 만들면 세대 갈등은 자연히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이해하고 대화하면 공통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최성범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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