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 조선해양 CFO 2006년부터 환율 떨어질 것으로 예상 환헷지
-5년간 환헷지로 인한 손실분 최대 6218억원…손실숨기려 분식회계 시작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 "분식 회계를 한 재무담당자 처음에는 자기가 환손실을 낸 적도 없다고 했어요. 그러다 환손실이 난 증거가 나오니까 강덕수 회장하고 같이 했다고 이야기한 거죠" (윤승희 법무법인 민 변호사)"
2조원이 넘는 STX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시작은 한 재무담당자의 환율 예측 실패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생금융상품을 잘못 가입해 중소기업들이 무너졌던 2008년 '키코사태'와 비슷한 일이 STX조선해양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사실심인 2심의 판결문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의 시작에는 금융 전문가였던 김모 전 STX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무리한 환 헷지가 있었다.
일본에서 선진 금융기법을 공부했다는 김씨가 STX조선해양에 온 것은 2006년께였다. 2005년 4조원이었던 수주잔고가 2008년 15조원까지 늘 만큼 STX조선해양이 성장을 거듭하던 때였다. STX조선해양은 전문적·과학적 환율예측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김씨를 환 헷지 등 외환 업무를 담당하는 팀장으로 앉혔다.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체는 배가 건조되는 동안 통상 다섯 차례에 걸쳐 계약금을 달러로 지급받는다. 건조 기간이 길고 달러로 돈을 받다 보니 환율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구조다. 때문에 환율변동의 상한과 하한을 정해놓고 은행과 계약을 맺는 '환헷지'를 걸어놓는다.
김씨 등 당시 재무팀은 환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떨어지는 방향으로(선물환매도)계약을 체결했다. 헷지비율도 2006년 말 56.1%에서 2007년 12월 98%로 늘렸다. 선박 계약 금액의 거의 전부를 환율 파생상품에 걸어 놓은 셈이다.
김씨 등 재무팀은 2006년 말에는 190억원의 이익을 얻었으나 2007년 11월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함께 원 달러 환율이 상승추세로 돌아서면서 2007년 말에만 429억원의 손실을 봤다. 당시 외환팀은 그러나 다시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헷지물량을 확대했다. 2008년에는 한해 수주금액보다 매도헷지금액이 더 많은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가 벌어지고 환율이 상승하면서 STX조선해양의 손실은 늘어만 갔다. 강덕수 전 회장측 변호인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헷지 실수로 인한 STX조선해양의 영업이익 감소분은 최소 3011억원에서 최대 6218억원에 이른다.
김씨는 환헷지로 인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자 2008년 손실을 2009년부터 나타나도록 회계처리했다. 2008년에는 2524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지만 356억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손익계산서를 꾸몄다. 김씨의 분식 회계 방식대로라면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이상 계속 회계 분식을 할 수밖에 없었으나 2009년 이후 조선업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김씨 등 재무팀은 그동안 상부에는 손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손실액은 감춘 채 전체상황이 담긴 재무리포트만 만들어 올리는 가하면 영업이익이 난 것처럼 실적을 보고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는 강 전 회장에게 분식 회계를 공모한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결했다. 김씨가 손실 사실을 모두 보고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손실액수는 계산해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법률위반으로 기소된 김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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