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사람들은 대개 나를 한국의 국가대표 해수욕장으로 알지. 물론 그래. 나를 찾은 피서객들이 올 여름에만 1600만명이야. 날씨만 뜨거워지면 내게 오지 못해 안달들이 난단 말이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다른 별칭들이 자꾸 붙네. ‘부산의 강남’에서부터 ‘한국의 홍콩’까지.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마천루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해외 도시의 야경에 경탄한 적이 많았겠지. 이제 멀리 갈 필요 없다구. 내가 이미 그렇게 옷을 갈아입었거든. 초고층의 숲이라고 할까. 한 때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안 좋은 소리도 들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몸값이 높아지고 있지. 부산 사람들에겐 해운대 입성이 성공의 상징이 된다고도 하더라구. 서울 강남만 잘 나가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내 얘기 한 번 들어볼테야?
최근 분양에 나선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의 분양가는 3.3㎡당 2700만원가량으로 예상되고 있다. ‘황금알’이라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와 맞먹는 가격이다. 엘시티는 해운대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만한 규모다. 최고 101층에 411m로 현존하는 국내 최고 빌딩인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305m)보다 100m나 더 높다. 세계적으로도 11위권이다. 대지 면적은 4만7944㎡로 축구장 6.7개 크기이며, 연면적은 66만1138㎡로 6.3빌딩의 2.8배에 달한다. 해운대 초고층 개발사의 정점이라 할만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엘시티 개발 사업이 이제 분양에 나서게 된 것은 최근 부동산 시장에 부는 훈풍의 덕택이 커 보인다. 특히 해운대 아파트값은 눈에 띄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 조사를 보면, 해운대구 지역 평균 아파트값은 3.3㎡당 1003만2000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8.5%가량 치솟았다. 부산 전체 평균 808만5000원에 비해 200만원가량 더 비싸다.
국내 주거용 건물 중 최고층인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의 경우 전용면적 59㎡형이 5억~6억원, 145㎡는 10억~15억원에 이른다. 222㎡는 40억~46억원 수준이다. 부산에서 고급 아파트는 대부분 해운대에 몰려 있다. 한국 최고의 해수욕장을 낀 바다와 수영강을 동시에 전망할 수 있으며 상류층이 모여산다는 만족감, 고품질 등이 해운대 아파트를 떠받치는 힘이다.
이 지역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전반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좋다보니 해운대도 그 바람을 타고 많이 올랐다”면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가격만큼이나 잘 지어졌고, 수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동네에 끼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강남에 입성하려는 심리와 마찬가지다. ‘해운대특별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11년 완공된 80층짜리 두산위브더제니스와 쌍벽을 이루는 현대아이파크(72층), 더샵아델리스(47층), 대우트럼프월드마린(42층), 현대하이페리온(41층), 베네시티(38층), 우신골든스위트(37층) 등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매년 수백가구의 주상복합 아파트 4~5개가 지어지면서 빠른 속도로 별천지가 돼 갔다.
높이 뿐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혁신적이었다. 현대아이파크의 경우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맡았다. 그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서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옥을 설계하기도 했는데, 해운대에서는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은 범선 모양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두산위브더제니스 역시 미국 시카고의 초고층 빌딩 '리버 이스트 센터'를 설계한 회사 '디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등이 참여해 파도를 형상화한 곡선형 외관을 완성했다.
이런 아파트들에는 누가 살까? 부산에 사는 부자들 외에도 서울 강남을 비롯한 각지의 재력가들이 별장으로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중소기업 대표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연예인들도 20~30명은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연예인들처럼 상주해서 살지 않고 한 번씩 해운대에 놀러와서 이용하는 별장으로 쓰는 비율도 20~3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층이 밀집한 ‘마린시티’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갈대가 우거지고 철새들만 찾아오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요트경기장을 조성하면서 매립했으나 개발이 지연돼 오랫동안 방치됐었다. 2000년대 중반에야 개발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2007년에 수영만 매립지에서 마린시티로 개명했다.
그보다 앞서1992년에 305만7000㎡ 규모 부지에 3만3300가구가량의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해운대는 신흥 주거지로 자리잡았다. 이 때부터 이미 부산의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부촌이었다. 물론 마린시티 등이 개발되면서 해운대 신시가지는 상대적으로 위치가 낮아졌다.
옛 수영비행장 자리에 지어진 ‘센텀시티’에는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와 롯데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입점해 있고 해외 명품숍들이 즐비해 쇼핑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초고층 빌딩 숲과 쇼핑, 홍콩을 연상케 하는 이유다. 부산에 있는 외제차 4대 중 1대꼴일 정도로 외제차가 흔한 곳이 해운대이기도 하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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