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쌀개방 등 예민한 사안 걸려 역풍 고려한 결정
최경환 추가가입 검토 발표 서둘러 향후 협상력 위축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진작 참여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우리도 국내 이해관계자들과 논의 과정이 필요했던 만큼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했다. 실기론(失機論)이 아니라 향후 글로벌 무역시장에서 한국의 역할 극대화를 논해야 한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
TPP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참여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시 경제·사회적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 사실만을 확대 해석해 과거지향적 소모전에 빠져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더구나 명확히 득실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할 TPP 참여 여부 결정을 서두르게끔 종용하고 있어 자칫 협상력만 떨어뜨릴 것이란 지적도 일고 있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TPP 협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13년 일본이 참여를 선언하면서부터”라며 “미국이 우리에게 여러 차례 참여를 요구했으나 당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다 가입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정부가 참여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추진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TPP의 전신인 칠레와 브루나이, 싱가포르, 뉴질랜드가 참여한 'P4'는 2006년 발효됐다. 여기에 미국과 호주 등이 참여하면서 판이 커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과정에서 촛불 시위가 벌어진 이후 시장개방에 대한 국민적인 반발이 커졌었다.
정부가 TPP에 관심을 표명한 이듬해인 지난해는 쌀 관세화 유예 기간 종료로 인해 쌀시장 개방에 대한 설득작업이 우선시돼야 했다. 일본은 이번 TPP 협상에서 쌀 의무수입과 별도로 미국산 쌀 수입량을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도 참여했다면 비슷한 수준으로 개방을 하거나 오히려 더 강한 시장개방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특히 TPP 실기론에 따라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섣부른 주장도 나오고 있다. 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다자간 FTA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공청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쳐 TPP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먼저 참여 의지를 밝히는 것은 협상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의 TPP 가입에 일본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시각도 잘못됐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을 포함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중요도가 TPP보다 훨씬 높다. 한중이 FTA를 기반으로 RCEP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TPP 가입을 반대할 명분이 적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일본의 전체 부가가치 수출 가운데 RCEP 5개국(한국·중국·호주·인도네시아·인도)이 차지하는 비중은 27.7%로, TPP 4개국(미국·호주·멕시코·캐나다)의 21.7%보다 높다. 이는 RCEP 타결이 일본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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