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개특위, 23일 개의조차 못하고 파행
與, 비례대표 축소해 농어촌 대표성 확보해야
野, 정치개혁에 역행…획정위 독립 보장해야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농어촌·지방의 위기인가. 사회적 약자·직능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의 위기인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두 개의 핵심가치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당초 팽팽하던 대결 양상은 선거가 다가오면서 지역구 의원을 둔 농어촌 지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두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의원정수 확대'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3일 전체회의와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선거구 획정 기준, 지역구·비례대표 의원 비율 등에 대해 논의하려 했지만, 회의 안건과 방식을 두고 여야 이견으로 파행되며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발표한 지역구 의석 범위(244~249개)에 대해선 장외 공방을 펼쳤다.
새누리당은 획정위 안이 비현실적이라고 공개 반발하면서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위해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지역구 수를 더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은 "농어촌 특별선거구를 제정하는 방안은 충분히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며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지역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획정위 안에 국회가 간섭하는 것은 획정위를 외부 독립기구로 설치한 취지에 반한다며 지역구 수 결정은 획정위에 맡겨두자는 입장이다. 야당 간사인 김태년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역구 의석을 늘리자는 건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 중 우리나라보다 비례대표비율(18%)이 적은 나라가 없다"고 반박했다.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고정해 둔 상황에서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농어촌 지역 의석수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당과 농어촌 의석 감소에도 비례대표 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야당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을 경우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의석 감소나 비례대표 축소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축소 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하던 새정치연합 지도부도 곤혹스런 모습이다. 당 소속 농어촌 의원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는 데다 지방을 홀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어서다. 여야 농어촌 지역 의원들로 구성된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은 비례대표 축소와 특별선거구제 도입을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이날도 농어촌 지역 의원들은 권역별로 회의를 갖고 성명을 발표하며 당 지도부와 정개특위를 압박했다. 야당 일각에선 제로섬 게임을 끝낼 유일한 방법인 의원정수 확대 주장이 또 다시 제기됐다. 정개특위 위원인 신정훈 새정치연합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늘어나는 수도권 의석수만큼 최소한도로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윤덕 의원도 "농어촌 지역구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현역 비례대표 의원들도 속이 부글부글 끊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내년 총선에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를 준비 중이어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농어촌 의원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현재 논의에선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 자체가 빠졌다"면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비례대표 비율을 걱정해야할 때 오히려 축소될 위기에 놓여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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