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 문지영(20ㆍ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걸음마를 뗀 두 돌때부터 피아노를 만졌지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녀가 세 살이던 1997년, 아버지는 국제금융위기(IMF) 사태로 사업이 어려워져 피아노를 팔았다. 집에는 아직도 피아노가 없다. 부모가 지체장애 2-3급의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라서 매달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형편이다. 문지영은 꿈을 내려놓지 않았다. 남다른 재능을 확인한 부모의 헌신 덕에 여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연마했다. 교회와 학원에서 연습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각종 지역대회를 휩쓸었다.
그녀는 상위 10%에 들 만큼 공부도 잘해 선화예중에 수석 합격했다. 그러나 부모의 뒷바라지가 어려워 홈스쿨링을 택했다.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피아노 공부는 김대진(53)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도움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기업의 후원도 이어졌다. 부영그룹, 대신금융그룹 등이 피아노 연습실, 장학금 등을 지원했다. 그 덕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해 김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문지영은 "처음 건반을 두드린 뒤로 장래희망을 바꿔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제 그녀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다. 지난 5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막을 내린 '부조니 국제 콩쿠르' 최종결선에서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제2번 F단조'를 연주해 우승했다. 올해 60회째를 맞은 이 대회에서 동양인이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다. 한국인으로는 1969년 백건우(69)가 골드메달, 1980년 서혜경(55)ㆍ1997년 이윤수(37)가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부조니 콩쿠르는 우승의 기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지난 쉰아홉 번의 대회에서 스물일곱 명만이 우승을 누렸다. 1회부터 3회까지는 줄곧 '1위 없는 2위'만 배출됐고, 2001년 격년제로 바뀐 뒤에는 단 세 명에게만 1위 자리를 허락했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은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74), 알프레드 브렌델(84) 등을 배출했다.
문지영은 바통을 이어받기에 충분한 실력자다. 2009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청소년 국제콩쿠르에서 공동 1위, 2012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청소년피아니스트 콩쿠르에서 1위, 2013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출전한 모든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일본 다카마쓰 콩쿠르에서 1위를 했고, 최연소로 출전한 이탈리아 제네바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의 우승은 물론 청중상, 특별상까지 3관왕에 올랐다. 이번 쾌거로 더욱 입지를 공고히 한 그녀는 "그동안 대회에 비해 이번 콩쿠르의 권위가 높아 긴장이 됐다. 음악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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