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여야가 28일 열기로 한 국회 본회의가 '눈먼 돈'이라고 불리는 특수활동비 문제로 파행됐다.
특수활동비는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에 따르면 '정보 및 사건수사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규정돼 있다. 기재부는 특수활동비를 편성할 때 적용되는 세부 지침으로 “사건 수사, 정보수집, 각종 조사활동 등을 위해 타 비목(費目)으로는 원활한 업무 수행이 곤란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요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소위 '눈먼 돈'이라고 칭해진다. 일반 예산과 달리 사용 내역을 영수증으로 보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각 부처는 특수활동비를 개별업무 특성에 따라 집행한다. 사용처 보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인 셈이다.
특수활동비는 모든 정부 부처에 편성돼는 것이 아니라 정보 수집 및 사건 수사 기관 등의 특수성이 있는 기관에 배정된다. 올해 정부 예산 중 8810억6100만원이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편성됐다. 전체 19개 기관 중 국가정보원이 4782억36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국방부(1793억7500만원)와 경찰청(1263억8400만원)이 그 뒤를 이었고,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경호실 등에서 총 266억7500만원을 특수활동비로 사용했다. 국회도 83억9800만원이 배정됐다. 국정원, 국방부, 법무부, 경찰청, 국세청과 미래창조과학부, 감사원도 특수활동비를 사용한다.
특수활동비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지기 시작한 건 지난 5월이다. 국회의원들이 특수활동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해명하면서 여당 원내대표이자 국회 운영위원장 당시 받은 국회 대책비 중 일부를 생활비로 썼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상임위원장 직책비를 아들의 유학비로 썼다고 진술하면서 영수증 처리 없이 사용되는 특수활동비 유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의 경우에는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원내대표 등에게 활동경비조로 특수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 일반 상임위원장의 경우에는 한달에 600만원 가량의 특수활동비가 지급된다. 이 돈의 집행방식은 각각의 상임위원장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상임위원장이 소관 상임위 간사에게 일정 금액을 건네주고 상임위 활동 등에 필요한 다과비나 식비 등 제반 경비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활동비 목적에 맞지 않게 이용하는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의 몫으로는 연간 12억원 가량의 특수활동비가 제공되어 양당이 나눠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여야는 한 목소리로 특수활동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었다. 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에 특수활동비 소위를 구성하자며 본회의를 보이콧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 탓이다.
여당은 야당의 요구가 특수활동비 개선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 예산'에 대한 손질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전체 기관에 배정되는 특수활동비 중 국정원 예산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2013년 4672억 원, 2014년 4712억, 2015년 4782억 원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와 수사 활동이 주요 업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은 본예산 외에도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기재부로부터 규모가 공개되지 않는 예비비도 배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예산 규모가 세세히 공개되면 국정원 조직 규모와 시설, 역량 등을 다른 나라가 추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 대상이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특수활동비 대부분은 국정원 예산"이라며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국가정보기관의 예산을 특수활동비로 잡지 않은 곳이 없다. 특수활동비는 예외적으로 현금 지출과 비밀 유지를 위해 비공개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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