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여기 온 거 회사에서 알면 곤란해요. 연차 쓰고 왔거든요. 신혼집 알아보고 있는데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른 데다 전세 자체를 찾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경매를 통해서 아예 내 집을 마련해 보려고요. 경매 법정엔 처음 와봐요."
오는 10월 중순으로 결혼날짜를 받아 놓은 회사원 김광규(34ㆍ가명)씨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귀하다는 전셋집을 구하다 지쳐 경매법정을 찾은 그였다. 평일에만 경매가 진행되는 탓에 회사에는 반차를 냈다. 주변 이목이 신경쓰여 회사엔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은 후끈한 열기를 내뿜었다. 경매에 나온 물건은 많지 않았는데도 김씨를 비롯해 1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서다.
김씨는 경매 전문가를 대동하고 있었다. 그는 구로구 오류동 아파트가 나오자 1억9000만원을 써냈다. 최저입찰가(1억8800만원)보다 겨우 200만원만 올려 적었다. 낙찰엔 실패했다. 김씨는 "이 아파트 시세가 2억3000만원 수준이라 1억9000만원에 낙찰받으면 명도 비용 등을 고려할 때 2000만원 정도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고 입찰했다"며 "무조건 낙찰받겠다는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리해서 가격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씨의 예비처남 송주엽(30ㆍ가명)씨도 이날 경매법정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송씨는 내년에 결혼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보고 참여한 것이다. 법정에서 꽤 연배가 있어 보였던 공모(66)씨는 혼기가 지난 막내 아들 신혼집 마련이 목적이라고 했다.
경매법정엔 '꾼'들만 모여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초보자'가 더 늘었다. 회사원 김진철(31ㆍ가명)씨도 처음 경매 법정에 나왔다. 근무시간이 자유로운 그는 "쉬는 날인데 마침 살고 있는 동네 빌라가 나와 급하게 경매장을 찾았다"고 했다. 평소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얼마 전 주식으로 손해를 본 뒤 경매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경매장을 찾기 전 3~4권의 관련 책을 읽어 예습도 했다. 이날도 처음부터 실제 입찰에 참여하기보다는 공부차원에서 분위기를 보러 왔다고 했다.
이날 남부8계에서는 평소보다 적은 18건의 경매가 진행됐다. 최근 경매 물건 감소세가 있었지만 휴가철이 겹치면서 물건 자체가 줄어든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물건이든 귀하면 값이 더 나가는 법. 최근에는 서울에서 경매를 통해 집을 사려면 감정가의 80% 이상은 써내야 한다. 지난 2월 80% 넘어선 낙찰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지난달엔 85.2%까지 올랐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경우 93.3%까지 치솟았다. 경매법정을 찾는 초보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측면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응찰은 많지 않았다. 18건 중 7건에 응찰이 이뤄졌는데 모두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주거시설이었다. 가장 많이 응찰자가 몰린 물건은 전용면적 58㎡ 규모의 오류동 아파트. 21명이 몰려 감정가(2억3600만원)의 103.3%에 달하는 2억4379만원에 새 주인이 결정됐다. 두 번째로 높은 금액(2억4170만원)을 쓴 사람도 감정가를 웃도는 금액을 적어 냈다. 이 아파트 같은 층의 경우 지난달 7일 2억4100만원에 매매 거래가 됐었다. 시세보다도 높은 수준에 낙찰된 셈이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감정가 대비 90% 이상으로 고가낙찰을 받으면 결국 시세보다 비싸게 사는 꼴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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