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떨어질 땐 채산성 악화 고통
-급등 땐 "폭리 취한다" 여론 비난
-가격변동성 취약한 국내 정유산업
-타격 최소화할 완충장치 시급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국제유가 급등락시 국가기간산업인 정유업체의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내수가격을 정할 때 국제유가를 여과없이 반영하다보니 유가 급등시에는 '폭리' 뭇매를 맞고 급락시에는 실적 '폭락'을 기록하는 천수답(天水畓)경영이 반복돼 안정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지적에서다. 이에 최고판매가격제를 재시행하거나 기금 마련 등을 통해 유가상평책(정유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실시하자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은 국제 유가 급등락에 따라 좌우된다. 판매가격 산정에 있어 국제유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원유를 현지에서 구매해서 국내로 수송하기까지 통상 한 두달이 걸리는데 이 기간동안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꼼짝없이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다.
일례로 지난해 4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배럴당 90~100달러에 원유를 구매했지만 유가가 40~50달러까지 급락하면서 총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최근 국제유가가 6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어 정유업계는 지난해 악몽이 재현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40.80달러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폭락했으며, 두바이유 현물가 역시 배럴당 50달러선 밑에서 횡보하고 있다. 여기에 정제 마진 하락과 재고자산 평가 손실까지 이어져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유가 급락에 따른 타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상태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고판매가격제를 되짚고 있다. 최고판매가격제란 정부가 정유 내수판매가를 고지하고 정유사들이 일정 가격 이상 올려받지 못하도록 제한했던 제도다. 유가 급등시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한편 급락시에는 정유사들에게 하한폭을 마련해줘 유가 안정화를 실현했다. 1997년 1월 유가 자율화가 되면서 이 제도는 없어진 상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최고판매가격제는 가격결정권이 정부에 있을 때 얘기로, 현재 체제를 20년간 유지해오고 있는 상태에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최고판매가격제를 논하는 것은 그만큼 내수가 국제유가 격랑 속에서 풍전등화 신세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 판매가격 안정화를 위해 유가 상평책도 업계에서 회자되는 대안 중 하나다. 유가 급등시 기금을 마련해놓고 변동분만큼을 유보금으로 쌓아뒀다가, 급락시에는 이때 쌓아뒀던 유보금을 풀어 변동분을 적게 반영해 유가 급등락시 내수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무조건 시장에 다 맡겨놓기에는 유가 변동에 따른 국내 산업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탄력세를 통해 국제 유가 급등락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유류탄력세를 휘발유 소매가격에 연동해 일정금액을 초과할 경우 잠정세율(탄력세율)로 세금을 인하해 유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개월 연속 휘발유 소매평균가격이 리터당 160엔을 초과하게 되면 탄력세율을 적용, 리터당 28.7엔을 붙이고 130엔 이하로 떨어질 경우 특례세율로 복귀해 리터당 53.8엔을 붙이는 식이다.
정유화학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과 일본 정유가격을 비교해보면 유가 급등락시에도 일본의 정유판매가격은 고른 수준을 유지했다"며 "가격 충격 완화 시스템이 있어 국내 유가를 훨씬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류세 조정을 통해 유가 급등락을 완충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빼기 만무하다는 시각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어쨌든 논의의 취지는 결국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쪽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라며 "국제 유가 급등락이 워낙 심해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의하지만, 최종적으로 이것이 정유업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을 완화하는 차원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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