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는 독립운동ㆍ임정 부인…건국절 만들면 개천절은 폐지하나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1.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북한주민과 재외동포 여러분!
제67주년 광복절을 온 겨레와 함께 경축합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귀한 삶은 바친 순국선열, 건국에 헌신한 애국지사, 6·25전쟁과 안보 일선에서 순국한 장병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70년 전 오늘의 벅찬 감동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건국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중략)
국민 여러분, 지난 70년은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중략)
67년 전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계승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고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의 항구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첫째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2012년에 한 경축사의 앞부분이고 둘째 경축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한 경축사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은 ‘광복’에만 초점을 맞춘 반면 박 대통령은 ‘광복’과 나란히 ‘건국’에 의미를 부여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경축사에서도 비슷한 역사인식을 밝혔다. “오늘은 제68주년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65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오늘 제69주년 광복절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66주년을 맞이하여”라고 읽었다.
◆ ‘정부수립’이 ‘건국’으로 대체= 올해 들어 달라진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두 차례 경축사의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바꾼 것이다.
경향신문은 16일자 사설에서 대통령의 ‘건국’ 언급은 가벼이 여길 사안이 아니라며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속내”는 “임시정부의 법통과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축소하고 이승만 독재를 미화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뉴라이트 진영과 여권이다. 이들은 1948년 정부 수립일인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가 2006년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글을 기고해 공론화됐다.
8월 15일은 해방된 날이자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하다. 현재 광복절인 이 날을 건국절로 하면 광복절의 의미가 축소된다. 이렇게 되면 독립투쟁의 역사도 덜 주목받게 된다. 건국절로 광복절을 대체하면 이승만 정부에 발을 들여놓은 친일파들이 건국의 주역이 되는 결과도 발생하게 된다.
이 교수는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복을 맞았다고 하나 어떠한 모양새의 근대국가를 세울지, 그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제에 의해 병탄되기 이전에 이 땅에 마치 광명한 빛과도 같은 문명이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이 착각을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건국절과 관련해 그는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하고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바탕으로 국가를 세운 일은 그 날에 “진정한 의미의 빛”이 찾아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라이트의 쟁점 셋= 이 교수가 제기한 쟁점은 ▲광복이 우리 힘으로 이뤄졌는지 ▲ 광복 전 어떤 근대국가를 세울지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모든 나라가 건국절을 기리는지 등이다.
광복이 우리 힘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무력으로 일본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축으로 하는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조선의 독립이 보장되지 못했으리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이 장제스 중국 총통을 움직였다는 주장과 이승만의 외교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통해 성과를 냈다는 주장이 맞서지만 말이다.
광복 전 어떤 근대국가를 세울지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는 임시정부가 삼권이 분립된 민주공화국의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이 참고할 사항이다. 이에 대해 뉴라이트는 임시정부는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서 영토,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집행 등 정부로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의미를 축소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뉴라이트가 건국의 기초가 됐다고 내세우는 제헌헌법도 3·1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건립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3ㆍ1운동을 계기로 탄생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시정부는 정부로서의 요건을 다 갖추지는 못했지만 민주공화국으로서 우리나라의 뿌리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제헌 이래 우리 헌법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뉴라이트의 ‘모든 나라에 건국절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건국절이 없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만 기린다.
더 생각할 논점이 있다. ‘국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할 때, 여기엔 시간을 거슬러 존재한 조선과 고려, 그리고 고구려ㆍ백제ㆍ신라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들 왕정 국가도 우리나라로 여기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비로소 우리나라가 건립됐다면 조선 이전의 국가는 ‘남의 나라’가 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첫 구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우리나라가 국가체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역사적으로는 과거 왕국으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했음을 명시한다.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은 2007년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법률안 발의했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철회했다. 여러 쟁점을 되짚어보면, 건국절 건립은 앞으로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