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졸른다. 나는 우리집 내 문패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나는 밤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감(減)해간다. 식구야 봉한 창호 어데라도 한 구석 터놓아다고. 내가 수입되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지붕에 서리가 내리고 뾰족한 데는 침처럼 월광이 묻었다. 우리집이 앓나보다. 그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보다. 수명을 헐어서 전당 잡히나보다.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어달렸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이상의 '가정(1936.2)' *필자가 편의상 띄어쓰기 함.
1936년은 시인 이상이 가장 문학적 역량이 왕성했던 해로 꼽힌다. 그 전해인 1935년 9월10일 다방 '제비'는 문을 닫는다. 쫄딱 망했다. 그해 말 이상은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인천ㆍ평양을 거쳐 성천이란 곳의 간이역에 불쑥 내렸다. 거기서 우연히 고보 동창인 원용성을 만나 한 달 이상 머무른다. 성천에서 돌아온 이상은 곱추화가이자 동창인 구본웅의 출판사 '창문사'에서 '청색지'와 구인회 동인지 따위의 잡지 발행을 도와가며 밥벌이를 한다. 지독한 생활난과 몰려드는 업무 한가운데서 그는 자기의 고통을 빠짐없이 스캔하려는 사람처럼 저런 시를 썼다.
이상의 시 '가정'은 난해하지도 않고 상징으로 에두르지도 않았다. '생활'이 모자라 문을 열기도 민망한 상황. 밤만 되면 꾸지람같은 자책들. 문패 앞에 서서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자아를 바라보는 순간. 제사에 쓰는 풀짚인형처럼 허풍선이로 곯아가는 몸,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창문 한 귀퉁이라도 틔워달라는 모습은 카프카 소설의 어느 구석같다.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은 없지만, 집은 나를 수입처럼 받아들여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펀(PUN)'. 힘에 겨운 도장을 찍는 것은, 더 이상 팔아치울 것도 없는 집구석에 마지막 전당 잡힐 것을 찾는 극한 상황을 리플레이한 것이다. 이상의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렸다"는 이 말은 다시 카프카의 풍경 속이다. 안 열리는 문과 그 문을 열려는 사람.
그해 6월 이상은 스물세 살 변동림을 만난다. 변동림은 친구 구본웅의 서모의 딸(이복동생)이다. 황금정(을지로3가) 셋방, 신혼집 이름은 도스토옙스키의 집이었다.
이상은 그해 겨울 신혼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떠나겠다고 한다. 아내 변동림은 경성역까지 따라왔다. 찬비가 뿌리는 날이었다. 동림은 버버리 코트의 깃을 세우고 흐느꼈다.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쿄에 도착하는 이상은 도시의 인정사정 없는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렸다. 골방에서 기침을 쿨럭이다 이듬해인 1937년 어이없이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 안 열리는 문고리를 쥐고 그것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포즈로.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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