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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바다와 강, 어디가 좋을까

시계아이콘01분 07초 소요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날이/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 만으로도/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도종환의 '그리운 강' 중에서


영국시인 존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ㆍ1878~1867)의 '그리운 바다'는 내 어린 동경의 기폭제였다. 그 시를 온몸으로 숨쉬며 내 방황의 감성은 자라나지 않았던가. "나는 다시 바다로 가리,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키가 큰 배 한 척과 바라볼 별 하나 있으면 되리/ 둥근 키바퀴와 바람의 노래, 흔들리는 흰 돛과/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트는 새벽만 있으면 되리"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그 전율과 운율이 오래 출렁거렸을 황지우도 '메이스필드 키드'였다. 이 시는 옛사람들이 말하던, '방(倣ㆍ남의 작품을 본떠 더 뛰어난 절창으로 나아감)'의 경지를 지향한다.


다정한 사람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논쟁을 벌인다고 하자. 강화도로 갈 것인가, 안면도로 갈 것인가, 아니 땅끝마을로 갈 것인가. 저마다 좋은 점이 있다. 목청 높여 가고 싶은 곳을 말하는 그 자리에는 이견인 듯 보이지만 실은, 같은 마음 하나가 있다. 그건 여행을 가고 싶다는, 함께 여행을 떠날 거라는 동의이다. 도종환은 강을 '광고'하기 위해 바다를 내세웠다. 어찌 강이 바다를 따를 수가 있으랴.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다를 이기는 강을 그려낸다.


흔히 비교광고는 '이성적인 소구(訴求)'라고 하지만 이런 경우엔 틀렸다. 비교야말로 뱃속 깊숙한 본능부터 우리가 벼러온 철천지 감성이다. 언니의 장난감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는 동생의 안목을 어찌 '이성'이라 하겠는가. 도종환의 비교광고는 강에 손을 들어주는 형식이면서, 실은 바다도 키워주는 대승적 광고다. 황지우가 메이스필드의 아름다운 방랑길에서 슬쩍 삐딱선을 탄 까닭은, 큰 것보다 위대한 작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기에 더 인간에게 기꺼이 다가와 있는 어머니같은 강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詩)가 꿈의 지느러미를 흔들어 거기로 간다. 상처받은 여기서 따뜻한 자궁같은 거기로.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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