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김소월의 '못 잊어'
잊는다는 것, 그리고 못 잊는다는 것. 기억의 경계에도 마음이 있다. 어떤 것은 잊히고 어떤 것은 잊히지 않는다. 어떤 것을 기억하면 어떤 것은 그 기억에서 빠져나와야 하지만, 어떤 기억은 붙박이로 박혀 상설되어 있다. 기억하려 해도 사물거리며 빠져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잊으려 해도 또렷이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간결하고 무거운 질문.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는가는 대개 그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떻게 남아있으며, 언제쯤 지워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어떤 사람도, 기억의 서랍 한켠에 들어있는 작은 소품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맺어온 인간관계의 무상함인지도 모른다.
그 무상함 속에서, 현실보다도 더 강력하고 강렬하게 살아있는 기억이 있다는 건, 그 기억자에게, 기억의 대상에게, 감회있는 일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그것이 원치 않은 이별을 전제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기억이 이별의 틈새를 더욱 아프게 각인시킬 때, 이 불망(不忘)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못 잊는 사람에게 우스개처럼 이렇게 말한다. "생각을 하지마. 그러면 잊을 거야."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생각이 거기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판인데, 하고 안 하고를 어떻게 선택한단 말인가. 그러면 다시 처방을 내려준다. "그냥 잊히지 않은 채로 좀 지내보시구려. 언젠간 잊힐 날 있으리다. 더러는 잊히지 않겠소." 이것 또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컨설팅이다. 그러면 못 잊는 마음이 다시 묻는다. "못 잊는데 어떻게 생각이 떠난단 말인가?"
소월은, 시가 뭔지 알았던, 세상의 몇 안 되는 노래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숨소리만으로도 푸념의 군더더기만으로도 이 같은 명품목걸이를 만들어냈다. 공짜로, 후손 전원에게 무한대로 착용 가능하게, 달콤한 불망가를 아리아리 흘려놓았다. 못 잊을 사람이 생각나 죽을 지경이도록.
빈섬 이상국(시인ㆍ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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