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탈락도 서러운데…증명서 끝내 안 돌려주는 기업들
작년 하반기 평균 열다섯번 지원
토익 등 서류 떼면 발급비만 9만원
구직자 절반, 반환제 있는지도 몰라
재지원때 불이익당할까봐 그냥 포기
실시하고 있는 기업 11.4%에 그쳐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 올 초 졸업한 김 모씨는 올해 상반기 채용에서 대기업 10여 곳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낙담도 잠시, 또 다른 기업 채용을 알아보기 바쁜 김 씨는 지난 2월 했던 일을 그대로 다시 하고 있다. 대학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토익 성적표 원본 등 이미 기업에 제출했던 서류들을 하나하나 다시 발급받는 일이 그것이다. 일일이 준비하느라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발급받는데 드는 비용도 현재 무직 상태인 김 씨에겐 만만치 않다. 불합격한 것도 서러운데 입사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이런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니 한숨만이 절로 나온다.
올해부터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채용 서류를 돌려주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도입됐지만 '취준생'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회사 인사부에 소위 '찍힐까' 우려돼 문의 전화 한 통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락했다고 서류를 돌려 달라는 말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채용 서류 반환을 위한 안내를 하고는 있지만, 구직자를 비롯해 심지어 기업의 인사 담당자조차 관련 내용을 잘 모르고 있어 제도 시행 여섯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번 지원하면 서류 발급비만 9만원 = 대학생 A씨가 한 회사에 입사 지원할 때 필요한 서류 발급비는 토익성적표 3000원, 졸업증명서 1000원, 성적증명서 1000원, 오픽성적표 1000원 등 총 6000원이다. 채용 합격을 위해서는 큰 금액이 아닐 수 있으나 지원 횟수가 늘어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구직자의 평균 지원 횟수는 15번이다. 이럴 경우 구직자의 평균 서류발급비는 무려 9만원에 이르게 된다. 입사지원이 늘어날수록 서류발급비도 증가하게 되는 것. 소득 없는 백수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다.
떨어진 회사에 남아있는 개인정보도 '찜찜'하다. 자신의 이름과 학교는 물론, 전화번호와 사는 곳의 주소까지 고스란히 공개된 상황이다. 회사의 정보보안을 믿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뒤끝이 개운치 않다.
서류를 돌려받으면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불안감이 가시는 것은 물론, 다른 곳에 지원도 할 수 있어 비용적인 면에서도 일석이조다. 올 1월부터 불합격자에게 채용 서류를 돌려주는 '채용서류 반환제'가 시행된 까닭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업은 구직자가 반환을 요구하면 14일 이내 입사지원 서류를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상반기 공채가 마무리된 지금껏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서류 반환? 절반 이상 '모른다' =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와 기업 인사 담당자 997명 중 절반 이상인 52%가 채용서류 반환제의 시행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 790명 가운데 379명(48%), 인사 담당자 161명 중 88명(54.7%)만이 채용서류 반환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인사 담당자의 88.6%는 채용서류 반환제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채용서류 반환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71.8%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가 44.2%로 1위를 기록했으며 서류 발급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37.6%), 지원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11.2%)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채용서류 반환제를 알고 있었지만 요청하지 않았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요청 처리 시간이 많이 들고 과정이 까다로울 것 같다는 의견이 41%로 가장 높았다. 제출한 서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31%), 재지원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9%) 등의 답변도 나왔다.
◆구직자, 실제 서류 반환 요청은 10%에 그쳐 = 구직자들은 채용서류 반환제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신입 구직자 713명을 대상으로 채용서류 반환제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94%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어서(75.2%, 복수응답)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구직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서(53.1%), 서류 마련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어서(48.1%), 서류 준비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36.4%), 구직자를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32.2%), 아이디어,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어서(26.9%) 등의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불합격한 기업에 서류 반환을 요청한 경험이 있는 구직자는 10.7%에 불과했다. 또 실제 기업에 서류 반환을 요청한 구직자들의 절반 이상인 60.5%가 제출한 서류를 전혀 돌려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앞으로 채용서류 반환을 요청할 생각이 있을까? 절반 이상(69.6%)이 요청할 생각이 없었으며, 이들 중 79%는 요청하고 싶지만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류 반환을 요청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요청해도 받지 못할 것 같아서(51.8%, 복수응답)가 1위를 차지했고, 절차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50.6%), 재지원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49.4%) 등이 뒤를 이었다.
◆대다수 기업 반환제 미시행…제도 정착 요원 = 인쿠르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채용서류 반환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11.4%에 그쳤다.
반환제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인사 담당자의 52.2%는 채용서류 반환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서류 반환에 대비해 자체 프로세스를 구축했다는 기업은 5.2%에 불과했다.
향후 채용서류 반환제에 대한 시행 방향으로는 지원자의 반환 요청 추이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의견이 54.3%로 가장 높았고, 도입 예정 없음이 23.8%, 현재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방침이라는 답변이 12.6%로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취업 서류 반환이 구직자의 개개인의 문제가 돼버리면, 법의 취지와 달리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며 "철저한 지도ㆍ점검과 함께 구직자들이 온라인ㆍ전자우편을 통해 제출된 서류의 파기 과정이나 채용절차법에 따른 반환의무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권고ㆍ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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