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협의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논의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별 진전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한일관계 교착의 핵심 요인이 어느새 해결 단계라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이후 양국 실무자들의 반응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일본 언론은 "어떤 인식에서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외무성 간부의 반응을 전했다(아사히신문). "뭘 보고 진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요미우리신문). "말하는 건 자유"라며 비아냥댄 일본 공직자도 있다.
'상당한 진전'이란 말과 '마지막 단계'라는 표현은 워싱턴포스트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실제 그렇게 말했는지 보려고 '한국어 버전'을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거절했다. "전례가 없다"는 게 이유지만 군색하다.
박 대통령과 일본 외무성의 극명한 인식 차이에서 한국 외교부는 딱 '중간'을 택했다. "양국은 8차례 밀도 있는 국장급 협의를 진행해왔고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톤다운' 시키자는 건지, 일본 측 반응을 반박하려는 건지 불분명하다.
인터뷰는 11일 오전 진행됐다. 하루 앞서 청와대는 방미 계획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한일관계가 곧 풀릴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현지 언론을 활용한 것일 수 있다. 실무자들이 알지 못하는 고위급 협상결과를 박 대통령은 지칭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물밑협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면서(인터뷰) 굳이 왜 이런 일들을 공개해야 했을까.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의 진전 과정을 미국 언론을 통해 '영어로만' 접해야하는 국민들은 벌써 졸속 타협을 우려하고 있다. 부처 간 소통문제와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은 말할 것도 없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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