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은퇴생활자 김모(67)씨는 예금에 넣은 5억원에서 나오는 2.4%대 이자 수익과 국민연금으로 생활을 한다. 1200만원이 1년 예금 이자인데, 여기에 이자 세금 15.4%를 제하고 김씨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달에 84만6000원 가량이다. 아직 미혼인 자식을 감안하면 원금에 손을 대긴 어렵다. 김씨는 11일 기준금리가 1.50%로 0.25%포인트 인하됐다는 소식에 고민이 크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예금 이자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침 예금 통장의 만기가 다가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김씨는 "원금은 최대한 지기켜고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0%로 전격적으로 낮추면서 은퇴생활자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들이 대출과 예금 금리 인하에 돌입하게 되면 대출고객들은 인하된 금리로 이자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예금 고객들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예금 이자조차 '역마진'이어서 사실상 원금을 지켜줄만한 투자처가 사라진 셈이다.
윤치선 미래에셋연구소 팀장은 "이제 원금보장만 쫓아서는 답이 없게 된 것"이라면서 "이자생활자들에게 해결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예금으로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들도 패닉에 빠졌다. 고령 은퇴생활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PB는 "솔직히 말해 70대가 넘는 이자생활자들에겐 이제 권할 상품이 없어졌다. 이분들에게 주식을 하라고 할수도 없고 해외투자를 하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제2금융권의 5000만원 원금 보장되는 비과세상품을 그동안은 추천했는데 그것조차 이제 이득이 나기 어렵지 않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저금리를 경험했던 일본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 고령자들은 20년 넘게 지속된 상황에서 예금을 많이 하지만 일부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는 해외채권이나 해외리츠, 인컴형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윤치선 팀장은 "전체 금융자산의 6~7%밖에 되지 않지만 워낙 저금리가 오래지속되다보니 자산배분형 상품에 투자하는 은퇴생활자 고령자들이 일본에선 등장했었다"면서 "한국도 이를 참고할만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섣불이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기보다는 리스크가 분배된 상품에 투자해 위험부담을 고르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팀장은 "장기저금리 상황에서는 큰 돈을 리스크한 상품에 투자하기보다는 자산배분이 잘된 곳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화폐의 퇴장' 현상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고령자들은 여전히 우체국에 예금형태로 많은 돈을 넣어두거나, 장롱 속에 돈을 숨겨두는 '화폐의 퇴장' 현상도 나타났었다"면서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시중 유동성이 제도로 돌지 않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리인하는 가계·기업 대출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더 떨어지면서 대출자들이 내는 이자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기업대출 금리도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