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합병발표 후 삼성물산 주가 급등 덕 봐‥"운신의 폭 좁아져" 지적도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공격에 국내 연기금의 입지가 좋아졌다. 삼성물산 주가 급등에 제일모직과 합병 발표 후 삼성물산 지분을 사모은 덕을 톡톡히 볼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이 발표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5일까지 삼성물산을 총 2261억원(331만5700주) 순매수했다. 특히 엘리엇이 합병안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4일부터 이틀동안에만 1087억원(149만5400주)을 사들였다. 이 기간 연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2.12%포인트 증가했다.
국내외 큰 손들의 잇단 매집에 삼성물산 주가는 코스닥 테마주처럼 탄력있게 움직였다. 합병발표 직전인 지난달 22일 5만5300원으로 마감됐던 주가는 이날 장초반 8만원을 넘었다. 불과 2주일만에 45%나 급등한 것이다.
덕분에 삼성물산 지분 9.79%(1574만8893주)를 보유한 1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 평가가치도 급증했다. 합병안 발표 이후인 2주새 평가차익만 3900억원(주가 8만원 기준)에 육박한다.
연기금이 엘리엇 등장 이후 지분 매입을 늘린 것은 패가 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1대 0.35)에 불만을 품을 주주들을 달랠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삼성물산이 다른 주주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배당 등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며 "잇단 수주 발표, 비용절감을 통한 실적 개선 등을 통해 주가를 주식매수청구권 이상으로 유지하는데도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엘리엇이 4일 오전 지분 매입 사실을 공개하며 합병에 반대하자 삼성물산은 같은 날 오후 호주 시드니 서부지역 공사 수주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추격매수에는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급등은 차익매물 출회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엘리엇 지분 매입 공개 후 4~5일 이틀동안 삼성물산 주식 공매도량이 급증한 것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급증했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장 초반 5% 넘게 급등하며 8만원을 뚫었던 주가는 차익매물이 쏟아지면서 장 시작 10여분만에 하락 전환했다.
주가 상승은 즐겁지만 연기금 입장이 마냥 꽃놀이패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질적인 운신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공세를 강화할 경우, 다음달 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안과 관련한 표 대결이 이뤄질 수 있는데 특히 1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표명할 경우 외국계 자본의 공격에 동참하는 측면으로 비춰질 수도 있어서다.
한 운용사 CIO는 "합병비율 측면에서는 삼성물산에 불리하지만 현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보다 높고 향후 표 대결시 국내 정서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국민연금이 현실적으로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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