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국민연금 고갈은 애초 계획된 바다.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든 어쩌든 기금은 고갈된다. 기금운용의 신(神)이 온다고 해도 고갈은 피할 수 없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두고 논란이 많다.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지만 한 마디로 줄여보면 '이래야 수익률을 높여서 고갈을 피할 수 있다'는 거다. 최근 수년간 국민연금 수익률을 놓고 언론과 국회에서 여러 질타를 한 탓에 기금본부는 입이 한 주발 나온 상태다. "감사받느라 한 해가 가고, 기금운용위원회는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공단 본부에서 간섭도 심한데 뭘 하란 거냐"며 투덜거린다.
국민연금은 경제가 아니라 복지로 봐야 한다. 철학의 문제다. 국민연금을 그냥 하나의 거대한 펀드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노후복지 기금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수익률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금운용을 잘해 투자수익을 많이 거두는 건 중요하다. 다만 수익률이 절대적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런 태도는 시중의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들에게 어울리는 마음가짐이다.
"수익률이 그렇게 중요하면 고민할 필요 있나요. 한 10개 정도로 쪼개서 대형운용사 운용본부장들을 헤드로 앉히면 되잖아요. 경쟁 시켜서 수익률에 인센티브 준다고 하면 수익률 잘 나올 겁니다."
국민연금 논란을 두고 한 증권사 대표가 해준 말이다. 다소 농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자산운용사들이 굴리는 자금은 투자자들이 '돈 좀 불려 달라'며 맡긴 돈이다. 국민연금은 아니다. 2100만명 가입자는 자신의 노후자금을 국가에 맡겨놓은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제1목표가 수익률이라면 국민연금은 안정성이다. 이기는 투자가 아니라 지지 않는 투자를 하는 게 기금본부의 역할이다.
2008년 경제위기로 글로벌 연기금이 여기저기 피를 토할 때 국민연금만은 멀쩡했다. 미국 캘퍼스나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은 20%가 넘는 손실을 냈지만 국민연금은 -0.2%에 그쳤다.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 셈이다.
2008년 국민연금과 지금 국민연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수익률을 좇아 헤지펀드를 손대는가 하면, 위탁운용사의 단기수익률(1년)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경제는 사이클이다. 앞으로도 수 차례 경제위기가 닥쳐올 터다. 그 때도 국민연금이 2008년 같은 모습을 보여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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