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위 당정회의 참석 방통위 "단말기유통법 긍정 효과 나와…개정보다 정책역량"
미래부·방통위 보완책, 소비자엔 체감 효과 없고 사업자 부담만 늘어
보궐선거·임시국회 의식했나…전시행정 지적
[아시아경제 권용민 기자] 1787년 예카테리나 러시아 여제(女帝)가 새로 합병한 크림반도 시찰에 나섰다.
극도로 낙후된 그 지역의 총독인 그레고리 포템킨은 가난한 마을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강변에 가짜 마을을 만들었다. 배가 지나가면 세트를 해체해 다음 지역에 또 가짜 마을을 급조했다. 당연히 여제의 눈이 닿는 마을은 모두 '영화' 같이 살기 좋은 마을 뿐이었다. 이같은 촌극이 낳은 용어가 '포템킨 빌리지'다. 알맹이는 없이 겉만 번지르 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8일 단말기유통법 보완책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체감할 만한 효과가 없지만 사업자에게만 타격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사업자들이 최대 지원금을 쓰지 않는데 상한액을 올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취하던 방통위의 태도가 변했다는 점에서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당정 회의에 참석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단말기유통법이 의도한 긍정적 효과들이 나타나는 등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며 "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긍정적 효과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달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인 단말기유통법 개정안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미래부·방통위가 발표한 보완책이 최 위원장의 이같은 요청에 힘을 싣기 위한 결정으로 보고 있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이동통신사가 지급할 수 있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액을 기존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보조금 대신 받을 수 있는 요금할인율도 12%에서 20%로 확대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직장인 신건일씨(30)는 "이통사들이 지원금을 상한선까지 지급하지도 않을뿐 아니라 그정도 수준을 받으려면 최고가 요금제를 사용해야 한다"며 "상한선 3만원 상향한 것이 소비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겠냐"고 말했다. 사실상 지원금 상한선 상향으로 인해 체감되는 통신비 인하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업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에 대한 대처방안을 고민해 나가겠다"고 정부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공시지원금 상한액 변경은 지원금의 차등 폭을 확대해 가입자 차별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면서 "잠재적으로 지원금 확대 가능성이 높아져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요금할인 폭 확대를 위해 지원금 상한을 변경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도 비판했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대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시장 경쟁 상황을 보면, 상한선 자체가 의미 없을 정도의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국내 소비자들의 휴대폰 교체 주기나 할인 폭 등을 감안하면 요금 할인 비율 상향 조정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가 전시행정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은 8일 방통위 전체회의 직후 "지원금 상한액이 낮아서 이용자 혜택이 확대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국민에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이려는 전시행정을 하고 있으며 4ㆍ29 보궐선거와 내년 4월 총선을 향한 전략적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회의에서도 지원금 상한선 변경에 대한 반대입장을 취했었다.
업계 관계자도 "보궐선거를 위해서라도 (정부가)정치적으로 뭔가는 해놓아야하는 상황이니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기업환경은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고 꼬집었다.
권용민 기자 festy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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