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정현진 기자, 원다라 기자]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또 다시 행진을 시작한 유족들이 광화문에 도착했다. 전날 오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유족들은 이날 여의도를 거쳐 오후 5시 쯤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 오후 6시 현재 문화제를 열고 있다.
이날 광화문까지 행진하는 유족들과 참여 시민들 가운데에는 행진 이틀째라서인지 다리를 저는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특히 공덕동 로터리에서 만난 13살 남학생 1명은 쩔뚝이면서도 뒤로 밀리지 않고 행진대열에서 부지런히 걸어 한 유족이 이를 보고 기특하다며 '아들'이라고 불러주기도 했다. 한 삭발한 여성이 남편의 손을 꼬옥 부여 잡고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초 국회를 지나려고 했던 행렬은 국회 앞에 전경들이 막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마포대교로 진로를 틀었다. 행렬이 지나가는 대교 중간에는 곳곳에 '진실을 인양하라'는 리본이 묶여 있었다. 목발을 짚은 소년도,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도 있었다. 한 시민은 중간부터 장애인 콜밴 타고 와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불편한 몸으로 행진을 함께 했다.
가는 중간에 시민단체들이 "먹어야 걷죠"라며 초콜렛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 시민은 "유가족이 슬픈 만큼 서울시민도 슬픕니다. 서울시민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손수 쓴 피켓을 들고 행렬을 응원했다.
행렬은 1개 차로를 막고 진행됐다. 경찰 인력이 부족해 유가족측에서 직접 행렬이 차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내봉을 들고 안전지도를 하기도 했다. 결국 행렬 중 한 명이 지나가던 오토바이에 가볍게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다. 이를 본 한 시민은 "집회할 때는 그렇게 경찰 많이 내보내더니, 이게 다 시민인데 시민 안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고 울분을 터뜨렸다.
행진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이어갔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등의 요구 사항들이 구호로 제창됐다.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받쳐 든 유족들도 눈물보다는 담담한 표정으로 길을 걸었다. 지지 시민들도 '유가족 여러분 힘내세요','우리가 걸은 거리 만큼 우리 아이들도 더 빨리 돌아올 것'이라는 등의 피켓을 곳곳에서 치켜 들고 힘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특히 유족들과 동참 시민들은 행진 중 시내 곳곳에서 팸플릿을 나눠 주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받기를 거절하는 시민들은 드물었고, 한 60대 여성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반면 한 70대 노인은 "김대중, 노무현 때문이다"고 외치며 행진 대열을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이날 행진에 참가한 유족ㆍ시민들은 언론의 무관심과 세간의 보상금에 대한 관심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소모(40ㆍ남)씨는 구체적인 언론사명들을 언급하며 "지금 이렇게 시민들이 많은데, 나온 메이저 언론사들이 없지 않냐" 면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무슨 언론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모(58ㆍ남)씨는 "자기 가족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상금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사고로 자식이나 가족을 잃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막내 동생을 어릴 때 사고로 잃어,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에 공감돼 행진에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오후 5시쯤 광화문에 도착한 유족 등 행진 참가자들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다. 곳곳에서 시민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쏟아진 따뜻한 박수에 굳은 얼굴로 영정사진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오던 이들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행진을 함께 한 한 시민은 "사실 유가족들에게는 이렇게 박수와 격려가 필요할 지 모른다"며 "행진을 하고 이렇게 항의를 하는게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하지만, 이게 유가족들이 치유해나가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3살 이아와 부인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가 행진 대열을 본 오승준씨는 "벌써 1년이 됐나 싶다. 사실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몰랐다"면서도 "행진을 보고 행진 중 나눠주는 팸플릿을 읽으니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사실 인양 등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떠오르면서 하나도 해결된게 없는걸로 알고 있어서 행진을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행진대열이 도착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박유정씨는 왜 우냐는 질문에 "사실 저들은 피해자가 아니냐.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인데 저렇게 행진 까지 해야하는 자체가 슬프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행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문화제에 함께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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