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원다라 기자, 정현진 기자]
식목일이자 청명일인 5일 서울 여의도의 풍경은 1주기를 앞둔 세월호 사건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듯 했다.
한쪽에선 무심한 채 활짝 핀 봄꽃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고, 다른 한 쪽에선 세월호 유족들이 자식들의 1주기를 앞두고 아직 제대로 된 진상 조사도 시작되지 않은 현실을 규탄하며 아픈 다리에 파스를 붙인 채 또 다시 거리 행진을 벌였다.
#장면 1.
이날 여의도는 다소 쌀쌀하고 바람이 부는 데다 어제밤부터 비가 와서 축축한 상태였다. 이날 오후 한때 강한 빗줄기가 들이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벚꽃이 만개해 온통 하얗고 분홍색인 국회의사당 앞 벚꽃길과 여의도공원은 화려한 우산을 들고 더 화려한 봄꽃을 즐기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많은 시민들이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을 배경으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꽃처럼 만개했고, 비오는 와중에도 다들 웃고 사진찍고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히 친구, 가족, 연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딸 아이를 목마를 태우고 싱글벙글 가는 아버지, 팔짝팔짝 뛰며 같이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떠는 3살짜리 어린이, 고개를 젖혀 꽃을 보고 까르르 웃다가 뛰어가는 아이,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손을 꼭 잡고 벚꽃길을 산책하는 노부부 등이 여의도 벚꽃길을 가득 메웠다.
한 노점상은 "사람들의 숫자가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오늘 비가 오는 날이라 사람들이 적을 거라 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와 공을 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바야흐로 만개된 봄 꽃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꽃 구경을 온 강다영(24ㆍ여)씨는 연신 즐거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축제가 곧 시작한다고 해서 어제 갑자기 날 잡고 왔는데, 셀카를 많이 찍었고 꽃도 귀에 꽂고 그랬다"며 "날씨가 좀 더 좋았으면 했지만 그래도 활짝 핀 꽃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아이 둘과 부인을 데리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던 직장인 강준성(42ㆍ남)씨도 "아이들에게 꽃 구경 시켜주려고 데려왔다. 비가 오지만 주말밖에 시간이 안되서 어쩔 수 없지 않나"며 "좀 더 좋은 날 데려왔으면 좋았을 듯 싶다. 그렇지만 꽃 자체로는 너무 예뻐서 애들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고 말했다.
두 자녀와 함께 온 60대 여성도 "주말에 꽃구경 가고 싶어서 가족들과 나왔다"며 "내가 억지로 가자고 해서 데리고 나왔는데 나도 신나고 자식들이 또 좋아하니 나도 더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이 여성과 함께 온 30대 초반 딸도 "솔직히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건 아니고 엄마가 억지로 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막상 따라 나오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띠었다. 대만 관광객 리(24ㆍ여)씨는 셀카봉을 이용해 친구와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벚꽃이 예쁘다. 하지만 비가 와서 아쉽다. 벚꽃이 이제 초기라고 들었다. 4월 중순 쯤 되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날 국회의사당 옆 벚꽃길에서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를 노린 무허가 노점상들도 판을 쳐 단속 공무원들이 물건을 강제 압수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질 정도였다.
#장면 2.
전날 자식들의 영정이 모셔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날 오후 서울대교를 건너 여의도 광장에 들어섰다. 막 피기 시작한 벚꽃아래 우산도 쓰지 않고 노란 우비를 입은 유가족들이 줄지어 걸어갔다. 안 내리다가 연일 내리는 비에 유가족들은 노란 비닐 우비 속에 영정 사진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단지 품속에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영정사진을 꼼꼼하게 비닐로 싸서 사진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파스 냄새가 났다. 자세히 보니 옷 깃 사이로 나온 손목에 파스가 보였다. 뿐만 아니라 종아리에 아대를 댄 사람, 붕대를 맨 사람 들 하며 저마다 오래 길을 걸어 온 흔적이 역력했다.
여의도광장에 들어선 유가족들은 가림막이나 천막 하나 없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았다. 한 유가족은 "천막도 없어서 비를 그대로 맞으니, 걸으나 서 있으나 똑같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아침 여덟시부터 걸어와 피곤했는지 벤치에, 벤치가 없으면 공원 아스팔트 바닥 위에 그대로 앉았다. 간혹 안에 입은 소복(흰 상복 상하의)을 다시 여미기도 했다.
조금 있다 식사시간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밥차에 실려 온 음식들을 받기 위해 유가족과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줄을 섰다. 밥은 조촐했다. 멸치, 시금치, 흰 밥. 흰 플라스틱 접시에 받아서 '땅밥'을 먹었다. 어디 올려놓을 데도 없이 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품고 온 영정사진이 비에 맞지 않게, 노란 우산을 빌려 그 아래 총총히 세워놨다. 우산 아래 대여섯명의 단원고 학생 영정사진이 모여섰다. 그도 잠시 밥을 먹고 온 유가족들은 얼른 하나씩 들고 품에 안았다. 그러면서도 연신 운동화속에서 발을 꺼내 주물렀다.
식사를 하지 못하는 유가족들도 있었다. 멍하게 앉아있던 한 유가족 엄마는 비닐 우의 안에 영정사진을 품고 우의 밖으로는 목에 건 아이의 학생증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끝나도록 그렇게 앉아있었다.
식사를 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옆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와서 바닥에 주저 앉아 먹었다. 비가 내리는 통에 빗물이 컵라면 속에 들어가도 늘 있어왔던 일인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 곁에는 장난스런 얼굴의 딸이, 자녀가 그리다 두고 간 팔레트 사진과 늘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이 올려진 책상 사진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상반됐다. 관광객들인 줄 알고 비닐 우의를 팔러 돌아다니는 할머니가 있을 정도로 무심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어떤 외국인 관광객들은 "축제냐"라고 물어보며 스쳐 지나갔고, 옆에서 태연히 벚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남자친구와 벚꽃놀이 구경 온 김정은(29)씨는 "매체나 미디어 통해 알려져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오늘같이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관심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좋긴 한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응원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에 놀러 왔다는 송지훈(22ㆍ남)씨도 "안타깝다. 가슴이 아프다. 행진하는 지 모르고 왔다. 함께 하고 싶다"며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유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은 나이를 상관하지 않았다. 여의도광장 근처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전번에 김치축제할 때도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했는데, 짠하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최근 정부의 보상금 지급 보도에 대해 "돈하고는 계산이 안 되는거다. 가슴 아픈 거는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벚꽃 축제한다고 왔다가 도시락을 안 가져와서 여기 유가족들하고 우연히 밥을 먹었는데 얘기를 들어 보니까 유가족들이었다"며 "너무 떠든다는 이야기를 사실 하긴 한다. 하지만 안 당해본 사람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막상 당해보면 돈하고 비교할 수 없다. 많이 산 사람도 아니고 이제 꽃 필 나이인데. 그건 돈 가지고 어떻게 할 게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한편 유족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 도로를 행진하려다 경찰의 불허 방침으로 여의도 공원 옆 길을 통해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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