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요즘 예금하면 바보라고?"
지난 주말 오랜만에 아이 축구교실에 참석했다가 몇몇 엄마와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전학을 가게 됐다는 한 아이의 엄마 말끝에 자연스레 대화는 부동산과 재테크로 이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한 아이 엄마가 '기사(?) 탓'을 하며 툴툴거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왜?"
"글쎄, 어제 만기 통장 찾으면서 재예치 할 예금 상품을 물어봤더니 ELS(주가연계증권)인지 뭔지를 추천해주더라고. (ELS는)안전하지 않아 싫다고 했더니 '이제 예금은 잊으라'는 기사를 보여주는 거 있지. 기준금리가 떨어져서 이제 예금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나 어쩌나 하는데…. 참 내, 졸지에 바보 취급당한 느낌이야. 예금하자니 뒤처지는 것 같고, ELS에 들자니 불안하고…. 결국 그냥 왔는데, 진짜 이제 주식 같은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 거야?"
다른 아이 엄마도 한 마디 더한다. "그렇지. 요즘 예금 하면 손해라잖아. 예금 통장에 묻어 두지 말라던데."
그런데 이런 대화가 낯설지 않다. 바로 8년 전이다. 2007년 증시가 활활 타오를 당시, '묻지마 펀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펀드 광풍이 불었다. 특히 그 해 펀드시장을 주도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펀드는 투자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한다고 해서 재테크 필수품으로 불렸다. 봄날은 길지 않았다. 불과 1년 뒤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코스피 지수가 1000선 아래로 추락하면서 장밋빛 펀드가 회색빛으로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8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07년의 경우 순식간에 급등한 증시가 간접 투자상품 열풍을 이끌어 냈다면 지금은 유례없는 초저금리 시대의 대안으로 간접 투자 상품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은행이다. 2007년 묻지마 펀드 열풍이 강할 수 있었던 것도 비교적 투자 문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던 간접투자상품을 은행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그랬다. 금융위기 이후 펀드의 불안전 판매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은행들의 펀드 판매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최근 은행들이 다시 ELS,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 영업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펀드, 적금이 혼합된 복합상품을 개발하거나 수익형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은행권이 이처럼 간접투자상품에 다시 주력하고 있는 것은 초저금리로 은행 이익의 가장 중요한 토대인 예대마진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후 은행의 불완전 펀드 판매 논란이 거셀 때 한 쪽은 '은행이 무지한 고객을 속였다'고, 또 다른 쪽은 '무조건 고금리를 쫓은 고객도 문제'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다보니 어느 쪽이 잘못했다며 명쾌한 답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초저금리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 현재, 투자의 시대를 쫓아가는 은행들이 8년 전으로 데자뷔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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