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45년째 한결같은 그 기다림…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무대에

시계아이콘02분 16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올해 한국 초연 45주년, 산울림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특별무대 준비

45년째 한결같은 그 기다림…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무대에 1969년 12월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일보 소극장 초연
AD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그만 가자" 에스트라공이 말한다.
"가면 안되지." 옆에 서있던 블라디미르가 답답한 듯 답한다.
"왜?" 에스트라공이 묻는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블라디미르가 다시 답한다.
"참, 그렇지." 에스트라공이 힘없이 말한다.


괴상한 몸짓과 행동으로 두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던 '포조'와 '럭키'마저 가버리고 텅 빈 무대에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만 남았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한 그루만이 덩그러니 서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이들의 대화는 끝날 듯 끝날 줄 모른다.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 씨는 오늘 밤에 못 오고 내일 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작품은 여기서 끝나지만 관객들은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이들이 내일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고도를 기다리리라는 사실을.

◆한국 초연 45주년, 국내 연극계의 이정표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한국 연극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만 올해로 45주년이 됐다. 작품을 쓴 사무엘 베케트(1906~1989)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1969년, 한국에서는 임영웅(79) 선생의 연출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을 했다. 제대로 된 번역본도 없던 시절, 관객들은 노벨수상작을 보기 위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초연의 성공에 힘입어 1970년에는 극단 산울림 창단 기념으로 재공연에 돌입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함현진(1940~1977), 김무생(1943~2005) 씨가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45년째 한결같은 그 기다림…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무대에 1985년 3월 산울림소극장 개관기념공연(전무송, 주호성, 조명남, 김진동)


임영웅 선생이 1985년 서울 마포구에 산울림 소극장을 지어 개관작으로 선보인 작품도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그 후 다시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임영웅 표 고도를 기다리며'는 2000여 차례 무대에 올라 50만여명의 관객들을 만났으며, 열세 차례 연극상을 수상했다. 프랑스ㆍ아일랜드ㆍ일본ㆍ폴란드 등 여덟 차례에 걸친 해외공연에서는 "동양의 정신이 가미된 '고도'"로 진가를 인정받았다. 임 선생은 "'고도'를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한 사람은 지구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 됐다. 1955년 '사육신'으로 데뷔한 임 선생에게 올해는 연출 인생 6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부조리극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무의미한 말장난, 반복되는 행위와 공허한 동작, 단순한 무대 등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인지도 모를 고도와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인공들에 대한 해석 역시 분분하다. 부조리극의 고전이자 반연극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1952년 출간돼 이듬해인 1953년 1월 프랑스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됐다. 당시에도 작품의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은 관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각종 매스컴에서는 해답을 구하고자 사무엘 베케트를 찾아다녔다. 미국 초연 당시 한 연출자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냐'고 묻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45년째 한결같은 그 기다림…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무대에 1997년 9월 서울세계연극제 초청작 공연 (안석환 김명국 한명구)


'고도는 누구인가'. 연출가 임영웅 선생에게도 이 질문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초창기에는 '고도(Godot)'라는 철자때문에 고도가 '신'이라는 해석이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관객 마음대로다. 각 개인이 그 시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도'가 될 수 있다. 결혼이 될 수도, 취직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딸이자 산울림 극장 운영을 맡고 있는 임수진(52) 극장장은 이 작품을 보다 편하게 대할 것을 권유한다. "한 배우가 '고도'는 '어른들한테는 어렵고, 아이들한테는 재밌는 작품'이라고 하더라. 관객들이 오히려 분석을 해가면서 어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 때 당시 내가 기다리고 희망하는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산울림 개관 30주년 특별공연, 역대 배우 총출동


지난 9일 오후에 찾은 산울림 공연장에서는 개막을 코앞에 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25년 만에 '블라디미르'로 돌아온 배우 정동환(66) 씨와 지난 10년간 총 450회에 걸쳐 '에스트라공'으로 무대에 섰던 박상종(53) 씨의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대사를 주고받다가 틀린 부분을 서로 고쳐주고는 마주 서 웃는 두 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임수진 극장장은 "역대 출연진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기획을 구상했지만 실제로 이뤄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지난해 배우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다들 바쁜 스케줄에도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해주셔서 12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서 굉장히 열정적이시다"라고 했다.


45년째 한결같은 그 기다림…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무대에 2008년 10월 한국 아일랜드 수교 25주년 더블린 베케트센터 초청공연


그동안 '고도' 무대에 선 배우는 모두 40여 명. 이중 열세 명이 이번 공연에 출연한다. 송영창(56) 씨는 20년, 김명국(52) 씨와 안석환(55) 씨는 14년, 박용수(59) 씨와 정재진(62) 씨는 10년 만에 출연한다. 한명구(55) 씨는 지난 20년간 750회에 걸쳐 '블라디미르'를 연기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이들이 펼치는 이번 '고도' 축제는 임영웅 선생에 대한 헌정 무대이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배우와 연출진들의 모습에서 누구인지도 모를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모습이 보인다. 공연은 3월12일부터 5월17일까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