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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그 끔찍한 조합에 대해서…연극 '가을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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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연출가 데뷔 60주년 기념작...손숙, 서은경 주연

엄마와 딸, 그 끔찍한 조합에 대해서…연극 '가을 소나타' '가을소나타' 중에서 (제공: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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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엄마와 딸의 관계만큼 복잡한 게 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어, 엄마는 딸이 만나는 최초의 여성성이며 동료이자 친구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말처럼 엄마와 딸은 운명공동체로서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하며 동질감을 느끼지만 그만큼 갈등하고 반목한다. 신달자 시인은 한 에세이에서 모녀지간을 두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다시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빌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않는다"고 설명한다.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가을 소나타'에서 엄마 '샬롯'과 딸 '에바'의 관계 역시 몇 번이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100분의 공연시간 동안 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 동안 딸은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었던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엄마를 공격하고, 엄마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둘 사이에 폐부를 찌르는 말이 오가는 동안 객석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귀를 기울인다. 끝내 '에바'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정말 끔찍한 조합이에요. 모든 게 사랑과 걱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잖아요"라며 소리지른다.


'가을 소나타'의 원작은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의 1978년 동명의 영화다. 당시 샬롯 역을 맡은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으로, 그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다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의 감독'이라고 불릴 만큼 여성들의 세밀한 심리를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감독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임영웅 연출은 "베리만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유명하지만 그가 극작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에 소개가 잘 안 된 스웨덴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자는 뜻에서 작품을 올렸다"고 말했다.

엄마와 딸, 그 끔찍한 조합에 대해서…연극 '가을 소나타' '가을소나타' 중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한 샬롯은 7년 만에 딸 에바의 집을 방문한다. 에바는 목사인 남편 빅토르와 함께 반갑게 엄마를 맞이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평안한 시간도 잠시. 발작 장애를 가진 둘째 딸 엘레나가 에바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샬롯은 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에바 역시 어린 시절 자신과 동생을 버리다시피 한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결국 한밤 중 샬롯과 대화를 나누던 에바는 그 동안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낱낱이 폭발시킨다. "엄마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잠깐 가지고 노는 인형이었어요" 에바는 분노하고, "난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어. 난 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 샬롯은 호소한다.


엄마와 딸을 연기한 배우 손숙과 서은경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어린 시절 부터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 무관심과 냉대에 지친 '에바'는 어딘가 주눅들어있고, 결핍된 모습이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엄마 앞에서 억지로 피아노를 칠 때의 얼굴에선 기대와 분노, 체념이 교차한다. 손숙은 엄마 보단 '여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살고 싶어했던 샬롯의 모습을 표정만으로도 섬세하게 연기해낸다. 딸이 쏟아내는 분노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또 한 번 가족으로부터 도망칠 구실을 찾는 이기적이고 비정한 모습이다. 하지만 "항상 가족 옆에 있고 싶었지만, 막상 집에 가면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것이란 것을 깨닫는다"는 샬롯의 마음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등을 돌려도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이다. 작품은 끝내 이 둘이 함께 소나타를 연주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한극 연극계의 대부 '임영웅 연출 데뷔 60주년 작품' = 이번 '가을 소나타'가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은 임영웅 연출 60주년 기념작이기 때문이다. 임 연출가는 1955년 '사육신'으로 데뷔한 후 60년 간 연극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의 대표작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1969년 정식 번역본도 없는 작품을 임 연출가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여 당시로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후 1985년 산울림 소극장을 지어 개관작으로도 이 작품을 올렸고, 40여년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렸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도 단연 '고도를 기다리며'를 꼽는다.


이번 '가을 소나타'는 그동안 임 연출가가 길러낸 후배들이 뭉쳐서 만든 헌정작품이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배우 손숙,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 등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데뷔 60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묻자 그는 "60년 했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60년이나 좋아하는 연극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라며 "여러 작품을 하면서 '아 이런 삶도 있구나', '이런 인생도 있구나'라며 나도 배우고 있다.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연극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9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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