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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연출가, "44년째 기다리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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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대사회의 우리모습...이만한 작품이 없다!"

임영웅 연출가, "44년째 기다리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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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이만한 작품이 없다"고 임영웅(77) 연출가는 얘기한다. 벌써 40년이 넘도록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려놓았던 그는 "매번 이 작품을 할 때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그린 '현대의 고전'"이라고도 평한다. 올해도 어김없다. 임영웅 표 '고도를 기다리며'는 지난 8일부터 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에서 정기공연을 시작했다. 꾸준히, 끈질기게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그의 모습에서 누구인지도 모를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는 임영웅 연출가에 의해 1969년 한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정식 번역본도 없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보러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초연의 성공에 힘입어 그 이듬해인 1970년, 임 연출가는 극단 산울림을 창단해 다시 '고도'를 선보였으며, 1985년 산울림 소극장의 개관작으로도 어김없이 '고도'를 무대에 올렸다.


산울림의 '고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연극평론가 마틴 에슬린이 우연히 이 공연을 보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며 극찬을 늘어놓자 해외 언론에서도 이 작품을 주목했다. 이후 베케트의 고향인 더블린 등 해외 초청공연도 잇달았으며, 그 때마다 현지에서는 "동양의 정신이 가미된 '고도'"에 열광했다. 한 작품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연한 임영웅 연출가에 대한 놀라움도 빠지지 않았다. "고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그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임영웅 연출가, "44년째 기다리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고도'"



-무대에 나무 한 그루만 달랑 있는데, 그 나무가 구불구불한 모양의 'S'자 형태다.
▲실재하는 나무가 아닌 상징적인 나무다. 작품이 워낙 난해하다보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여러가지다. 어떤 사람은 '물음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하더라. 또 미국에서 본 공연은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해서 배경을 도시로 하고, 나무를 전봇대로 놓기도 하더라. 작가의 설명이 '허허벌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게 다다. 그러니까 다 해석이 다를 수밖에. 작품할 때마다 느낌도 다르다. 난 이걸 초연 이후 44년간 해왔는데, 아마 '고도'를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한 사람은 지구상에 나밖에 없을 거다.


-'고도'를 이렇게 오래한 이유는 뭔가. 또 한 작품을 여러 번 했을 때 단조롭거나 지겹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작품이 워낙 훌륭하다. 구체적인 얘기는 아무 것도 안 나오지만 등장인물의 대화나 행동이 복잡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2000년 넘게 그리스 비극을 감상하는 것처럼 '고도' 역시 두고두고 오래갈 작품이다. 또 재공연을 할 때마다 지난 공연에서 발견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자꾸 나온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진다. 그만큼 베케트가 잘 썼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고도'가 뭘 뜻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초창기에는 '고도(Godot)'라는 철자때문에 고도가 '신'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구원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구원을 기다리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관객 마음대로다. 각 개인이 그 시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도'라는 해석이다. 이건 결혼이 될 수도, 취직이 될 수도 있다.


-처음으로 '고도'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
▲1950년대 후반에 신문사 문화부 기자할 때 연극 담당이었다. 외국에서 이 작품에 대해 하도 떠들어대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 번역판이 안나와서 일본어판으로 읽었는데 희안한 작품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리고 나서 신문사를 그만두고 연극계에 있는데, 1969년 12월에 초연을 하게 됐다. 당시 한국일보극장 개관작으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마침 연극계에서 '부조리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고도'를 하자고 했다. 때마침 우리가 첫 공연을 앞두고 한참 연습하고 있을 때 그해 사뮈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 출판사에서도 경쟁적으로 책을 내서 10가지가 넘는 번역본이 나왔다. 하지만 작품이 워낙 어려운 데다 형식이 희곡이니까 대중들이 다 어려워하더라. 그래서 연극이 나온다고 하니까 일주일치 티켓이 다 팔렸다. 연장공연도 매진됐다.


임영웅 연출가, "44년째 기다리고도 여전히 기다리는 '고도'" (제공: 극단산울림 촬영: 김두호)


-해외에서는 어떻게 유명해졌나.
▲연극계에서 유명한 석학 '마틴 에슬린'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 공연을 보고 "동양연극의 전통과 현대연극이 잘 융화됐다"고 평가했다. 그랬더니 당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어떻게 한국에서 '고도'를 공연하냐"며 놀라워하더라. 문화적으로 높은 나라로 보지 않았으니까. 일본에서도 와서 보고 감탄했다. 자기네들 '고도'는 재미가 없다면서. 결국에는 베케트 고향인 더블린에도 두 번이나 초청됐다.


-연극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휘문고 시절 6.25가 나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근데 가을이라고 부산에 있는 학교들은 예술제를 하던데, 우리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교 선배인 재무장관(백두진)을 무작정 찾아가서 돈 내놓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나싶다.(웃음) 그때 우리가 했던 연극이 '여로의 끝'인데, 전장 속에서 핀 사나이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듬해에는 또 유치진 선생이 주관하는 연극 좌담회를 갔는데, 끝나고 유치진 선생이 다가오더니 '자네는 연극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 그래서 '싫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그 말이 마음에 남더라.


-'고도' 처음 했을 때와 지금 상황을 비교하면? 산울림 소극장 운영은 어떤가.
▲연극은 언제, 어디서나 힘든 거다. 극장도 많이 생기고 극단도 많지만 돈벌이가 안된다. (산울림 소극장 운영은) 어려움의 덩어리다. 미친놈이나 하는 거다. 하지만 국내에서 내 극장 가지고 있는 연출가가 몇이나 되겠나. 힘들어도 괜찮다. 또 우리나라는 자꾸 새 작품을 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좋은 작품은 자꾸 해야 된다. 지금도 셰익스피어를 계속 하지 않나. '고도'는 현대의 고전이다. 이만한 희곡이 없다. 연극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고도'를 거쳐야 한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고도'를 할 거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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