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쳤던 스님 한용운,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네
[아시아경제 ] 충청도 홍성에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찾아올 위치를 알려줄 때 중심가의 동상을 이정표로 삼는다. 동상의 주인공은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이다. 장군은 오른 손을 번쩍 들어 먼 곳을 가리키고 있는데 '동상의 손 방향으로 5백 미터만 더 오라'는 식이다. 물론 이곳엔 백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한말 지조의 선지자로 웬만한 시민이면 '아, 님은 갔습니다' 정도는 기억하는 '님의 침묵'의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이 있다.
'만해, 그날들'은 1879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독립운동사, 근대 문학사, 근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만해 한용운의 65 년 삶과 역사를 낱낱이 헤집은 평전 격의 책이다. 평전이긴 하지만 3인칭 위인전에 가까운 보통의 평전들과는 달리 만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듯 '나는… …'의 1인칭 시점 문장이라서 받아 들여지는 감도가 다르다.
평전을 쓴 박재현 철학 박사는 동명대학교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한국 불교의 내력에 정통하다. 그가 평전을 위해 참고한 서적들은 만해의 유문을 모은 '한용운 전집'을 기본으로 '이회영 평전', '불교 근세 1백 년' 등 육중한 역사책부터 그 당시의 사건사고를 다룬 신문의 흥미성 기사까지 매우 방대하다.
'한용운 전집'을 기초해 1인칭으로 쓰였다는 것은 만해의 고급스런 언문들이 생생하게 전달돼 온다는 뜻이다. 신문 기사까지 참조 했다는 것은 '1907년 9월 대구에서 일본군 한 명이 개에게 물려 죽자 대구 관찰사가 모든 개들을 죽이라 방을 붙여서 10 일 만에 개의 씨가 말랐다. 측량법 시행 때 일본인들이 단순한 측량기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희천에 사는 홍기협이라는 자가 스스로 측량기와 자명종을 만들었다'는 그런 것까지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그 해 11월 송병준은 처를 데리고 일본에 들어가 이름을 노다헤이지로(野田平治郞)로 바꿨다.
만해가 경지에 오른 승려였던 만큼 금강산 진하화상, 변산 학명선사, 만공화상과 나누는 불교적 대화 역시 이 평전만의 짭짤한 혜택이다. 유복자 아닌 유복자로 컸던 홍성의 아들이 찾아오자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며 매몰차게 내쳤던 한용운도 '남 모르는 나의 아들'이란 글을 통해 '그도 어쩔 수 없는 자식의 아버지'였음을 실토하기도 한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살아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만해의 가르침만 유념하고 반듯한 가장들의 느닷없는 출가는 자제하자. (만해, 그날들 / 박재현 / 푸른역사 / 1만 5천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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