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총성 없는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큰 손' 투자자·경제학자들이 통화전쟁 부작용을 꼬집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탈 매니저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월간 투자전망 보고서에서 "세계 각국이 금리 바닥 다지기 경쟁을 하는 것 같다"면서 "금리인하가 동반되는 통화전쟁은 세계 경제 성장을 촉진 하기는 커녕 오히려 가로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로스는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낮은 금리는 현대 경제의 중요한 기능을 하는 금융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는 부작용도 안고 있다"면서 "이미 연금펀드와 보험 회사들이 저금리 타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라고 꼬집으며 "돈을 내고 저녁 식사 테이블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빈 접시만 쳐다보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그로스는 투자자들에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수적으로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그로스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빠르면 올해 중순께 시작될 수 있지만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나온 뒤 방향이 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로스는 지난달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보고 첫 번째 금리인상은 6월 또는 7월께 0.25%포인트 수준에서 단행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신흥시장 투자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이머징마켓그룹 회장도 앞서 저금리 시대의 함정을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금리를 추구하게 되면 일반 은행 예금자와 연금수급자들은 불이익이 불가피하다"면서 "각국 양적완화 분위기가 확산되면 인플레이션, 자산 거품의 부작용까지 더해질 수 있어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도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성장촉진을 추구하려는 각국 중앙은행의 계산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 우즈베키스탄의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57개국 가운데 17개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다. 지난달 28일 금리인하를 결정한 중국이 가장 최근에 통화전쟁 대열에 합류한 국가다. 투자은행 JP모건 소속 경제학자들은 폴란드,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헝가리, 태국, 한국 등이 금리를 인하해 통화전쟁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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