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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中企를 위한 면세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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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김현정 기자] 인천공항면세점을 방문한 A씨가 있다. 화장품을 살 생각이다. 아마도 고가의 제품일 것이다. 원하는 브랜드의 화장품은 롯데나 신라 간판을 건 대형 매장과 중소기업 매장에서 모두 판매되고 있다. 여기서 질문하나. A씨는 어디에서 화장품을 구매할까.


다른 얘기를 해보자. 해외 명품 뷰티브랜드 B가 있다. 한국의 면세사업자를 통해 인천공항 면세점에 화장품을 공급하기 위한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기존 대형 면세사업자와 중소기업 사업자가 있다. 질문 둘. 어느 쪽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B사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화장품 회사로 잘 알려진 참존의 면세점사업 도전이 무산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277억원의 임차보증금을 기한 내에 납입하지 못해서다. 업계에서는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더 큰 손해를 입을 뻔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소기업 면세점을 업계에서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앞선 두가지 질문의 답에서 찾을 수 있다. 면세점 사업의 기본은 자금력이다. 공항 면세점의 사례에서 보듯 일단 임대료가 천문학적으로 비싸다. 롯데, 신라 등 면세사업 '빅2'도 수천억원의 임대료 때문에 적자를 보는 형국이다. 또 자금력, 즉 규모의 경제가 성립돼야 콧대높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대상으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대기업이 이들을 상대로 최대한 협상해도 영업이익률 5%를 넘기기 힘든게 현실이다. 더불어 고가의 면세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대체로 수준높은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 및 사후관리 서비스에도 각별히 공을 들여야 한다. 적지않은 판관비가 필요하다.


이런 가시밭길에 중소기업이 뛰어들었다. 2013년 관세법이 개정돼 전체 면세사업권의 일정량을 중소·중견기업에 할당토록 한게 배경이다. 법 개정은 성장성 있는 면세시장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내수 부진과 성장 정체로 고민하던 참존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로 새로운 동력을 마련코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참존은 이미 낸 100억원의 입찰보증금만 날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시간이 없어 자금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고육지책의 입장표명이고, 사실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십년 업력의 참존이 여차하면 저축은행에서라도 자금을 융통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면세점 사업도 어쨋튼 장사다. 적게 남기고 많이 파는 '박리다매(薄利多賣)'나 공급자와의 협상을 통해 원가를 낮춰 적게 팔더라도 이윤을 남기는 '후리소매(厚利小賣)' 두가지 전략이 가능하다. 그러나 참존과 같은 중소·중견기업은 둘 중 어떤 전략도 불가능해 보인다. 당초 '기회의 균등'이라는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이든 공동의 전략수립이든 대안마련이 필요하다.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다음달 예정된 중기면세점 입찰은 다시 불발될 게 뻔하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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