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 칼럼]침묵, 눌변, 다변

시계아이콘01분 48초 소요

[데스크 칼럼]침묵, 눌변, 다변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AD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회고록 내용이 "쓸 말을 썼을 뿐"이라고 동조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퇴임한 지 2년도 안 돼 회고록을 출간한 만큼 이 전 대통령이 지금 회고록을 출간한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대북정책과 자원외교 등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과 핑계로 일관했다"고 일갈한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대북정책의 전환 등을 통해 정책의 성과를 내기에도 바쁜 박근혜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이들은 몰아세운다.


회고록의 내용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원외교가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김 전 대통령도 퇴임한 지 2년도 안 돼 회고록을 출간했고 회고록 내용도 전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왜 지금 회고록을 출간했느냐고 나무랄 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회고록에 언급된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을 관련 당사자가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점이나 북한 측의 정상회담 대가 요구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협상에 대한 무기'라고 단언하고 있다는 점은 이 전 대통령 측이 곱씹어 볼 사안이라고 본다.


보통 사람 이상의 지략을 가진 정치인들인 이 전 대통령 측 사람들이 이를 몰랐다고 하면 '바보'였을 것이다. 이런 반박, 비판이 밀물처럼 쇄도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음에도 회고록이 출간되도록 했다는 것 때문에 이런저런 의문을 던지도록 한다. 이 회고록이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사전 봉쇄하고 박근혜정부의 전 정권 심판의 예봉을 꺾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질문은 수도 없다.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답은 '그것에 가깝다'로 나오고 있다.


어쭙잖게 논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정상외교가 순탄하지 않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회고록은 한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의 내밀한 이야기를 여과없이 언급했다. 특히 중국 지도부가 공개하기를 꺼리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무 외교관들의 전문조차 기밀서류로 분류해 30년 뒤에나 공개하는 게 정부의 정책이다. 하물며 정상 간 대화나 대화록은 말해 무엇하랴. 정상 간 대화를 이런 식으로 공개해버리면 어느 나라 정상이 한국 대통령과 회담하겠다고 쉽게 나서겠는가. 정상회담을 갖더라도 '한국이 곧 공개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발언에 신중을 기할 게 뻔하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이번 회고록은 한국의 4강 외교를 힘들게 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주한 중국대사관 측이 회고록 전문 번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박근혜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중 우호관계 수립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회고록이 향후 박근혜정부의 4강 정상외교의 발목을 잡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외교자산이 고갈돼 막후협상을 공개하는 북한과 남한은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이 하나둘 무너지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고 심정이 답답해졌을 것이라고 능히 짐작한다. 그렇더라도 좀 더 참고 숙성시키는 인내심을 발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이 있다고 해서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침묵의 가치를 금이라고 한다면, 눌변(訥辯)은 은이지만 다변(多辯)은 비수가 되기 십상이다. 세 치에 불과한 혀는 잘 놀리면 역사를 만들지만 자칫 잘못하면 멸문의 화를 낳았음은 사마천이 '사기' 곳곳에서 강조한 바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