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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너무 사랑해 국민 귓방망이 후려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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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너무 사랑해 국민 귓방망이 후려친 정부 박성호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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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영국 신문사들은 신문의 페이지 수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다. 편집자들은 페이지 수를 줄이려고 현재의 판형과 같은 큰 종이를 선택했다. 큰 종이에 신문을 인쇄하려면 상당한 추가비용이 들었지만 세금부담이 더 컸던 셈이다. 이 세법은 1855년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도 이 사이즈의 신문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집단적 타성이라고 부른다.


죽음과 더불어 누구도 피해 나갈 수 없다는 '세금'은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도 크다. 우리 사회가 연말정산을 두고 한바탕 홍역을 앓고 있다.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기는커녕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는 한숨이 주변에서 끊이질 않는다. 저출산과 노령화 시대에 역행하는 소득세법이기도 하다. 다자녀 가정에 주는 환급액이 크게 줄어들었고 연금저축 등 노후대비를 위한 금융상품 공제혜택도 감소했다.

급기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섰다.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은 증가하고 저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은 경감된다"며 '경제정의'를 외쳤다. 담배가격을 올릴 때도 정부는 세금 때문이 절대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강변했다. 너무 사랑해서 네 살 아이에게 핵펀치를 날린 보육원 교사의 변명과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다. 이번 연말정산안을 최종 도출했을 때 '이런 사달이 날 것이란 점을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라는 점이다.

통계상으로는 최 부총리의 추산이 현실에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직관적이다. 논리적으로만 항상 사고하지는 않으며 지름길도 찾는다. 연말정산에서 작년보다 더 돌려받는 납세자는 침묵하고 1만원이라도 더 내는 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여론은 그렇게 형성된다. 이걸 몰랐다면 정부와 여당은 '우리 국민은 박근혜정부를 120% 믿고 신뢰한다'는 교만한 착각에 빠졌던 게 확실하다.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는 집권 3년 차인 1982년 4월 항공모함 2척과 구축함 7척, 그리고 2만8000여 명을 남미에 파병했다.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섬을 놓고 전쟁을 했는데 그 섬에 사는 영국 주민은 1200여 명이었다. 주민의 20배가 넘는 병력을 파견했고 주민 수에 맞먹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대처 전 총리는 바로 250여 전사자들의 유족에 친필 위로편지를 썼다. 이게 바로 소통이다. 1600여만 명의 납세자, 그리고 그에 딸린 부양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정책을 바꿔놓고 정부는 어떤 소통을 했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이번 연말정산, 담뱃값에 대한 국민적 공분 역시 시간과 함께 잊혀지는 것처럼 보일 게다. '우리는 일을 하는 척하고 정부는 보수를 주는 척 한다'는 1970년대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농담 아닌 농담처럼.


정부의 정책은 '집단적 타성'을 만들어낸다. 한번 방향이 잡혀 흐르기 시작하면 단기에 이를 되돌리기는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 이미 정부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경제성장률, 고용, 소비, 투자 어느 하나 정부의 의지대로 진행되는 게 없다. 여기에 청와대 비선과 비서관들 기강해이 논란 등 국정 난맥상은 시쳇말로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는 술자리 안줏거리가 됐다. 국민들은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달릴 채비를 하고 있다. 국정운영자에 대한 믿음은 경제 전반을 좌지우지한다. 단순히 연말정산으로 몇십만 원 돌려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부문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민스키 모멘트'(경제학자 하이만 민스키 이름을 따서)란 용어가 있다. 경제는 심리다.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가 낙관적 기대에서 관망적, 혹은 비관적 기대로 바뀌게 되면 금융불안정성이 급속히 증가하는데 이 전환 시점을 민스키 모멘트라고 부르고 한국 사회가 서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3不(불신ㆍ불안ㆍ불만)이다. 지도자를 믿지 못하니 미래가 불안하고, 불안한 삶 속에 만족이 있을 수 없다. 한국 경제를 수축시키는 '3불'을 청산하는 게 급선무다.






박성호 금융부장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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