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적합업종 지정 뒤 4분의 1이 해제됐는데…
업계 "골든타임 놓쳐" 시큰둥…LED 시장은 외산이 장악해 대기업들 판로 막혀 철수단계, 막걸리는 해외진출 사업 접기도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조강욱 기자, 이광호 기자]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 규제한 업종 중 약 4분의 1을 지정 해제 했다. 마침내 대기업들이 해당 사업에 다시 진출할 수 있게 됐지만 반응이 영 시원찮다.
3년간의 중기적합업종 규제로 인해 '골든 타임'을 놓친 재계는 외국 대기업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30일 3년만에 중기적합업종에서 해제된 LED 조명 사업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 대다수는 "골든타임은 이미 놓쳤다"는 반응이다.
◆LED 조명, 초기에 내수 진출 막아 아예 사업 철수= 지난 3년간 국내에서 LED 조명을 생산하는 대기업은 12개에서 9개로 줄어들었다. 반면 4개에 불과했던 외국 기업들은 14개로 늘었고 매출도 3배, 점유율은 10%를 넘어섰다. 모두 필립스, 오스람, GE 등의 업체다. 나머지 시장은 값싼 가격을 무기로 나선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중기적합업종이 시행되기 직전 외산 LED 조명 업체들의 국내 매출은 265억원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815억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1000억원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삼성,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신수종 사업으로 LED 조명을 선정하고 관련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당시만 해도 LED 조명의 경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었다. 삼성과 LG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은 LED 칩과 모듈, 완제품 등을 수직계열화 해 초기 LED 조명 시장에서 기술과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1년 동반성장위가 LED 조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선정하며 내수 시장 판로가 막혔고 기술 개발도 여의치 않게 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해외 LED 조명 시장에서 모두 철수했다. 국내 LED 조명 사업 역시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철수 직전 단계까지 왔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LED 조명 초기 시장이었던 만큼 칩, 모듈, 조명 완제품 등을 수직계열화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미 LED 조명의 경우 프리미엄 시장은 필립스, 오스람 같은 외국 대기업이, 저가 시장은 중국산 업체들이 장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좌초된 '막걸리 세계화'의 꿈= 골든타임을 놓친 곳은 유통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막걸리 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4419억원에 달했지만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쇠락해 지난해 약 2000억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한때 '막걸리의 세계화'를 내세우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던 CJ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아예 막걸리 사업을 접었다. 내수 시장 기반 없이 해외 진출 자체가 어려워 아예 사업을 접은 것이다. 막걸리 뿐만 아니라 김, 면류, 두부, 장류 등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식탁을 세계에 선보이겠다는 기업들의 꿈은 모두 좌절됐다.
민성식 한국식품산업협회 대외협력팀 팀장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들이 시장에서 축소되는 등 수입품에게도 밀리는 상황이어서 지난해 해제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무조건 제한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힘을 합쳐 시장 규모를 키웠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B2B 시장, 일부 중소업체와 외국 기업만 수혜봤다= B2B 시장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전경련은 배전반, 금형(2품목), 기타 플라스틱 용기, 공기조화장치(3품목), DVR, LED등, 낙뢰방지시스템, 맞춤 양복, 송배전변압기 등의 중기적합업종 해제를 신청한 바 있다.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더니 일부 중소기업과 외국 대기업들이 수혜를 보는 역차별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상호 전경련 산업정책팀장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 가운데 오히려 외국기업들에만 혜택을 줘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또 영세 중소기업들에게 혜택이 가야 하는데 일부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만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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